본문 바로가기

[On Sunday] 빛바랜 무신불립<無信不立>

중앙선데이 2013.04.28 03:15 320호 31면 지면보기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李玖)는 한국어를 못했다. 일제에 의해 어린 시절을 일본 도쿄에서 보냈고 광복 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MIT를 졸업하고 미국 여성인 줄리아 멀록과 결혼했다. 그의 모국어는 일본어·영어였다. 1963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거듭된 사업 실패에 이혼까지, 그의 생은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만난 건 2004년 5월. 황세손 자격으로 종묘제례를 주재하기 위해 일본에서 잠시 귀국했을 때다.

수차례 인터뷰를 사양했던 그였지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예감해서였을까. 종묘제례를 앞두고 예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난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 (한국)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정체성만큼은 온전히 한국인이다”라고 천천히,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던 모습엔 나름의 기품이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그는 도쿄 아카사카 뉴프린스호텔 202호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죽음이었다. 독살설까지 제기됐다.

인터뷰 중 고단한 삶을 “역사 속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던 그의 말이 떠오른 건 최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다. 일제 침략으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이구 황세손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치가이기 때문에 (침략 여부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신처럼 판단할 순 없다”는 식의 말을 했다. 여기에다 1989년 이후 최대 규모라는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까지 이어졌다. 태평양 건너 미국이 우려를 표한 뒤에야 “역사인식이 외교문제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꼬리를 내렸기에 더 얄밉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일간지 국제부 기자인 친구는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아베 내각이 뭐가 진짜 강한 것인지 외교의 기본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일본 온라인 매체의 기자는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총리가 워낙 오랜만에 나오다 보니 오버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냉철하고도 단호한 대응이다. 일본 특파원을 20년 가까이 한 미국인 친구는 “한국인은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게 문제다. 독도 영유권 문제로 새끼손가락을 자르는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감정적 대응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귀띔했다.

다섯 달 전 기자가 쓴 On Sunday의 제목은 ‘무신불립(無信不立)의 한·일 관계’였다. 한·일 정치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이 말대로 신뢰는 모든 관계의 기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은 적어도 한·일 관계에선 빛바랜 구호처럼 돼버렸다. 새로 정부가 들어선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한·중·일 정상은 아직 함께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있다. 서로에게 덕담으로 ‘무신불립’을 얘기하는 모습을 곧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