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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세상탐사] ‘대한민국 젠틀맨’의 자화상

온라인 중앙일보 2013.04.28 03:48




최근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결국 사표까지 낸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비행기 소동’을 살펴보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수 없는 대목이 많다. 그는 대학을 나온 50대의 대기업 임원이다. 스펙으로만 봐도 ‘대한민국의 젠틀맨’이라고 불릴 만한 사회지도층에 속한다. 이런 리더들의 ‘기본인식과 행동’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짚어보게 된다.



 #“내가 누군데”

 포스코에너지 임원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옆 좌석이 비워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언짢아했다고 한다. 옆 좌석을 비워 놓는 특별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만석(滿席)이 아니라면 항공사들은 종종 VIP손님에게 옆 좌석을 비워줘 편히 갈 수 있게 배려한다. 이 임원도 300회 이상 해외 출장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박근혜식 특별 서비스’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직전까지 비행기를 탈 땐 항상 이코노미 일반석을 예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항공사에선 박 대통령의 경우 드러나지 않게 특별좌석으로 만들어 줬다. 이코노미석 첫 번째 좌석(28 A·B·C)으로 옆 좌석을 비워두는 방식이다. 이 임원도 그런 대접을 요구했다가 여의치 않자 제자리에 앉아 탑승 내내 불만을 품은 것 같다는 얘기다. 알아서 VIP로 대접하는 것과 스스로 VIP 대접을 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평소 ‘나를 VIP로 대접해 달라’고 요구하고 다니지 않는지 묻고 싶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이 임원은 스튜어디스를 불러 면세품 구매를 하겠다고 했다. 출국 비행기 안에서 먼저 구매를 한 뒤 귀국편에서 물건을 받는 ‘사전구매제도’를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전구매제도는 72시간(사흘) 이상 해외에 머물렀다 돌아오는 승객에게만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4월 15일 미국 LA에 도착한 뒤 17일자 귀국 비행기를 예약했다. 48시간(이틀)이어서 사전구매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승객이었다. 기내 면세품은 귀국할 때 공항 출구에서 건네줄 수 없고 반드시 비행기 안에서만 거래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고객이 요구한 물건을 한국에서 현지로 배송해 주문자의 귀국 비행기에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고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는 더욱 화를 냈다고 한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워. 귀국할 때 내가 물건을 받을 수 있어, 없어? 돼, 안 돼?”라는 말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왜 항공사의 규정을 수용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계속했을까. 모두 지켜야 하는 규정이 있어도 나 하나만은 편법으로 된다는 생각이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것과 무관할까.



 #“무시하는 거냐”

 이 임원은 환기도 되지 않는 기내가 너무 덥다며 현재 온도가 몇 도냐고 따졌다. 항공기는 전체 공기를 2분마다 환기시킨다고 설명하자 1분으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또 실내온도가 24도라고 하자 서울의 건물들은 19도(산업통상자원부 규정은 여름 26도 이상, 겨울 20도 이하)라며 이에 맞춰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스튜어디스가 그에게 얼음물을 권유하자 이를 거부하고 ‘진토닉’을 달라고 했다.



 식사 때는 메뉴판에 없는 죽을 달라고 했다. 죽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에도 “이 메뉴는 누가 정하는 거야?”라며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했다. 잠시 뒤 비즈니스 이상 고객에게 특별 서비스로 제공하는 라면을 달라고 했다. 그의 행동이 ‘도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라면이 설었다, 짜다며 승무원들과 옥신각신했다.



 마침내 그가 승무원에게 다가가 ‘너, 나를 무시하느냐’라며 책으로 신체를 가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사자와 연락이 안 돼 해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건 이 임원은 처음부터 항공사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심사가 꼬일 대로 꼬였던 것 같다. 회사 돈이라 할지라도 600만원짜리나 되는 A380 비즈니스석의 고객인데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못한 항공사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권위의식에 물들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한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해프닝이 일어난 때는 가수 싸이가 신사들의 허세를 꼬집은 ‘젠틀맨’ 신곡을 발표했던 무렵이다. 한국의 리더들은 높이 올라갈수록 그만큼 모범을 보이는 게 아니라 ‘특권의식, 편법의식, 권위의식만 커진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김시래 중앙SUNDAY 편집국장 대리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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