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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싸이 안의 ‘푸에르’

온라인 중앙일보 2013.04.28 01:40
싸이의 뮤직비디오에 10억 명이 넘는 지구인들이 열광했다는 것은 분명 21세기 인류의 공통적인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자연의 소리보다는 반복적인 기계음이 테크 토이 세대에게는 더 친숙한 고향의 소리일 수도 있겠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가 우는 자연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보라. 심심하다며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음악에 몰두할 것이다.



 싸이의 뮤직 비디오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도 매력적으로 비칠 것 같다. ?강남 스타일?에서 풍자의 대상이 졸부들이었다면, ?젠틀맨?의 과녁은 돈 앞에 무너지는 가짜 권위주의다. 돈 많은 싸이를 위해 쇼핑백을 들어 주는 백발 노인들은 마치 젊은 오너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봉사해야 하는 무력한 직장인의 모습 같다.







 유아적 욕망과 장난기에 대한 뻔뻔한 수용과 반성 없는 자기 확신도 보인다. 여성에 대한 초등학생 같은 장난이나, 가인의 몸짓이 여성을 도구화하는 반페미니즘적 이미지라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필자의 눈에 주인공들의 성적 장난은 질척거리거나 에로틱하기보다는 그저 천진난만해 보인다. 생각 없는 아이들에게 정치적 관점을 들이대는 것은 우습다. 싸이의 늙지 않는 영원한 어린아이, 푸에르(Puer)의 모습은 21세기 전 지구적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옹알이하듯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음악과 어린 아이돌의 사춘기 아이들같이 걸러지지 않은 성적 동작에 열광한다.



 싸이는 현재 스스로를 가벼운 B급 음악이라 간주하지만, 대중음악도 고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조용필의 길을 따라 하면 어떨까 싶다. 조용필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신하면서 영원한 현역으로 세계관을 담은 음악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밥 딜런(Bob Dylan)과 닮았다. 밥 딜런은 원래 포크송 가수였지만, 반전 운동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젊을 때는 정치적 참여도 활발했다. 로큰롤에서 가스펠 송, 일렉트릭 뮤직과 재즈·스윙까지 광폭의 영역을 보이는 것은 물론 작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그에 관한 책들이 고등학교 교과서로 선택되기도 했다. 딜런은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화가로 작품 활동도 활발하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제는 오히려 엘리트주의에 빠진 이들이 대중문화 종사자들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싸이나 조용필 같은 빅 스타뿐 아니라 음악, 연기, 그림, 글 등 다재다능한 젊은이들이 많은데 여전히 주류 소비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민트그레이, 루비스타, 슈가볼, 바이바이배드맨, 해리빅버튼, 페이퍼컷 프로젝트, 옐로우 몬스터즈… 등 훌륭한 밴드들이, 이름이 너무 어려운 데다 지상파 방송에는 좀처럼 초대받지 못한 채 홍대 앞이나 대학로 등의 무대에 갇혀 활동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만발해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이름 없는 신인들의 무대가 지금보다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분노와 피로감에 싸인 한국인들이 서로 싸울 때도 뮤지컬처럼 노래로 갈등을 풀어나간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대북 방송에도 정치 얘기 대신 흥겨운 우리의 대중음악을 매일 내보낸다면? 사면초가의 고사처럼, 음악에는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며 악마도 회개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예술은 원래 도덕이나 정치보다 힘이 세다.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융 분석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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