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피차일반

온라인 중앙일보 2013.04.28 00:02
둘째가 입대 전에 몇 달 동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였다. 카페 영업은 대략 밤 12시 전에 끝나지만 청소하고 정리하고 나면 항상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왔다. 나는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라 잠자리에 들고 아내 혼자 둘째가 올 때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곤 했다. 둘째가 좋아하는 딸기 같은 과일을 준비해두고 말이다.



아내는 그 시간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을 반겨주고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는 시간을, 손을 씻고 식탁에 앉은 아들과 차와 과일을 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그래서 나는 모르고 아내는 알았다. 아들이 일하는 카페에서 파는 와플이 얼마나 맛있는지,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나이는 몇 살이고 이름은 무엇인지.



한번은 회식이 있어 늦게 귀가했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둘째를 볼 수 있었다. 둘째는 모처럼 보는 아빠가 반가웠던지 아니면 원래 엄마와는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지 그날 카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형이 있는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인성이?” 하면서 아는 체를 한다. 인성이는 둘째보다 한 살이 많은데 아는 게 참 많다고 한다. 특히 한자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말할 때 어려운 사자성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둘째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으면 그 사실에 깜짝 놀라며 “정말 모른단 말이야?” 하면서 개탄을 한단다. 둘째는 그 형을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아무래도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며 낙담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인정머리는 없지만, 그러고 보면 주변머리도 소갈머리도 없지만, 자식놈의 탄식을 들으니 죄책감이 머리를 들었다. 지금까지 자식 교육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과오를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에 떠넘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둘째의 한자실력, 적어도 사자성어 실력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고 일취월장시켜 그 인성이란 녀석이 둘째를 괄목상대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우선 둘째의 현재 실력부터 테스트해 본다.



“너 ‘와신상담’이란 말은 알지?” “아뇨.” “그럼 절치부심은? 몰라? 하, 이거 점입가경이로구나. 너 점입가경이란 말은 알겠지? 그것도 몰라. 완전히 목불인견이구나. 참담하다, 참담해. 어떻게 그 쉬운 말을 모른다는 거야? 인성이라는 아이 심정이 이해가 된다.”



모처럼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던 둘째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관심과 다그침과 무시와 실망이 당혹스럽다. 둘째는 아빠에게 묻는다.



“그럼 아빠는 ‘멘붕’이란 말 알아요?” “알지. ‘멘털 붕괴’라는 말이잖아.” “그럼 ‘흠좀무’는요? 모르죠? ‘갑툭튀’는요? ‘뻐카충’은요? ‘금사빠’는 아세요? ‘안습’이네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쉬운 말인데. 봐요, 아빠도 모르는 말 많잖아요.”



요즘 청소년들이 쓰는 말 같은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둘째는 ‘흠좀무’는 “흠, 좀 무섭군”이고 ‘갑툭튀’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며 ‘뻐카충’은 “버스 카드 충전”이고 ‘금사빠’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고 한다. ‘멘붕’에 빠진 내게 아들이 사자성어로 한 말씀 한다. “모르기는 뭐 피차일반이네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김상득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