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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철 총주방장이 말하는 한식당과 그릇

중앙일보 2013.04.24 04:04 강남통신 16면 지면보기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음식이 달리 보인다. 내가 그릇에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근무하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국제행사를 여러 차례 치렀다. 이때마다 ‘난 늘 먹고 만드는 음식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처음 맛보는 한식일 텐데’라는 생각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맛도 맛이지만 특히 푸드 플레이팅(음식을 접시에 예쁘게 담는 것)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접시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보기 좋게 가지런히 담을 수 있을지 연구를 거듭했다.


"좋은 식기 쓰는 식당 주인에게 듣는 그릇 이야기, 흥미롭지요"

 그중 하나가 엿보기였다. 다른 한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서도 어떤 그릇을 썼는지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국의 멋이 잘 어우러진 도자기에 담긴 한식을 접하면, 그릇과 음식이 마치 한 몸인 양 싶어 음식만 먹어 치우기 아까웠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릇까지 신경 쓴 한식당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점점 늘고 있다.



 그냥 보기에 좋은 그릇을 쓰는 정도가 아니라 도예가가 만든 작품을 식기로 쓰는 곳도 적지 않다. 만약 이런 곳을 찾는다면 식당 주인한테 도자기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맛집 셰프한테 음식 설명을 듣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릇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태원에 있는 한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이 놋수저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골동품”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이 수저를 썼을 우리 선조들 생각이 나, 시간 여행을 떠난 느낌이 들었다. 또 “귀한 도자기에 음식을 담았다”는 주인의 설명을 들으면 마치 귀빈이라도 된 기분에 으쓱해지기도 한다.



 다른 한식당에 갔다가 맘에 드는 식기가 나오면 나중에 따로 구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멋들어진 도자기에 담긴 한식을 보고 있노라면 과하지 않은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외국인에게 “한국이 어떠어떠한 곳”이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고즈넉한 한식당에 데려가 멋진 자기에 담긴 한식을 맛보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외교 수단이다.



 아름다운 도자기를 쓰는 한식당을 방문할 땐 그저 한 끼를 때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술관에 간다고 한번 여겨보면 어떨까.



송정 기자



◆배한철 총주방장(57)은 현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를 모두 총괄하고 있다. 수석 셰프들과 함께 ‘식재료 발굴팀’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유명 한식을 찾아내고 맛보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젊은 셰프들과 한식 식재료를 서로 공유하는 ‘찾아라 맛있는 식재료’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셰프 모임인 KCC(Korea Chefs Club)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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