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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논란…이승만 건국과정 오늘 잣대 재단은…

중앙일보 2013.04.24 03:00 종합 8면 지면보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 박정희식 모델은 부정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시대상황을 무시한 일방적 주장을 경계했다. 평생 민주주의를 화두로 삼아온 그를 만났다.



칠순을 맞았어도 여전히 현역으로 저술활동을 하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유능한 정당들이 경쟁하며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것이 정치학자로서 그의 바람이다. [김상선 기자]

진보 원로 최장집 교수 인터뷰

진보 정치학계의 원로 최장집(70) 고려대 명예교수. 어느새 고희(古稀)를 맞은 그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22일 책 두 권을 동시에 냈다. 신간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사진)와 증보판 『어떤 민주주의인가』다. 책을 낼 때마다 그랬듯이 그는 이번에도 요즘 정치상황을 깊숙하게 들여다 본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대북정책과 민족주의 통일론, 대선 이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 등을 시도했다.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민주화 이후 386으로 대표되는 운동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정당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대선과 총선은 그 결과라고 했다.



 박근혜정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여러 면에서 전환적 시점인데, 박근혜정부는 전환적 대통령이라기보다 안정적 관리형 정부, 행정관리형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데 대해선 해방 직후의 상황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경제발전을 이룬 실천적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두 책에서 보통사람들의 세계에 더 깊이 뿌리를 둔 유능한 정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의 역할이 약한 것이 마치 한국 정치의 특징처럼 느껴졌다. 정당의 역할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노동과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능한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역할은 대개 관료들이 해왔다. 사회의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 관료들에 의해 사회경제적 문제가 다뤄진다는 얘기는 그만큼 정당의 대의민주주의가 활발하지 못함을 입증한다.”



내수 기반 경제발전 모델 검토할 만



 -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학점을 매긴다면.



 “‘합격이다, 낙제다’라고 하기보다 우리 민주주의에 결여된 것을 먼저 제기하고 싶다. 정당과 민주주의의 교과서적 기초를 묻는 것이다. 안정적 내수기반을 가진 제조업 중심의 발전 모델도 주요 과제로 검토해 봤으면 한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많이 얘기했지만 기존 경제운용 원리의 대안이 되는 발전 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재벌 중심 구조에서 완전히 방향을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경시되고 정책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한 영역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인가』 증보판에 새로 실은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라는 글이 주목된다. 통일론보다 평화론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민족주의적 통일론이 지배적인 현재의 대북정책은 민주주의 발전에도 긍정적이지 못하고, 또 남북관계에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국내 민주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통일 잠시 밀어두고 평화 매진을



 - 통일에 대한 이견을 내긴 쉽지 않다.



 “통일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통일론에 관한 한 현상적으로는 보수·진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본 원리는 모두 민족주의적 통일론이다. 하나는 보수적 민족주의 통일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 민족주의 통일론인데, 이런 통일론이 남북한의 평화공존마저 어렵게 하는 게 문제다.”



 - 이유가 뭔가.



 “진보와 보수가 둘 다 추구하는 목표는 통일이지만 그 방식이 현격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는 북한 체제를 포용적으로 긍정하는 자세를 취하고, 다른 하나는 남한이 압도적 힘으로 흡수하는 통합을 전제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 국가기구를 통한 억압 효과를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북 정책에 대응해 진보파들이 북한을 민족주의적 감성으로 감싸면서 통일에 대한 열정을 과시하는 일이 반복되곤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로는 국내 보수-진보 갈등도 그렇고, 남북 간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는 데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 북한의 핵 위협으로 상황이 너무 악화된 것 아닌가.



 “북한이 너무 나간 건 사실이다. 그동안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배제되고 고립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엔 끊임없는 긴장이 이어졌고, 핵 위협까지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더 이상 이런 구조를 계속하지 않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을 잠시 옆에 밀어두고 남북한이 평화적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매진하자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라든가 한·미 관계에서 우리가 지역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박 대통령 행정관리형 모습만 보여



- 박근혜정부를 어떻게 보나.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전환적 시기를 거치고 있다. 수출주도형 산업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은 그것이 가져온 성과에도 여러 부작용이 누적되는 실정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아직 완전히 판단하기엔 때 이른 감이 있지만 안정적인 관리형 정부랄까 그런 행정관리형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사 문제에서도 사회의 광범위한 대표성이 잘 안 보인다. 새누리당에서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개혁적인 소장 의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이전의 여당과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 민주당은 어떤가.



 “여당에서 역동성과 기대를 갖게 하는 점이 발견되는 데 반해 민주당은 그런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조차 우려된다. 여당과 야당의 격차는 선거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386이 정당 민주주의 실패 불러



 - 원인이 뭘까.



 “정당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권력에 저항하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통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통치론이다. 당내 민주화 혹은 국민참여경선 등의 이름으로 당의 역할을 해체하면서 리더십이 성장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버렸다. 민주화 이후 386으로 대표되는 운동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정당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가 단적으로 나타난 게 지난 총선과 대선이다. 선거 과정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했으나 담론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민주당의 노선 변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데.



 “민주당이 대선 평가를 하면서 좌클릭이냐 중도 강화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논쟁을 위한 논쟁이다. 지난해 대선, 총선에서 민주당이 덜 진보적이어서 패배했다거나 혹은 더 진보적이어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개혁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평가였다. 현실적으로 센터(중도)도 못하면서 진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백년전쟁’이란 동영상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평가를 비롯해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수준이 너무 저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방 후 역사를 도덕 대 반도덕, 민족 대 반민족, 냉전 수구 대 종북 좌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형태다. 이런 극단적 시각은 해방 직후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45년부터 6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렇게만 문제를 봐선 안 된다. 한국이 이뤄낸, 북한과 비교하기조차 힘든 경제적·사회문화적 발전을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해방 후 특정 시점, 일제강점기 특정 시점에 고정시켜 보는 것은 교조적이다.”



냉전수구 vs 종북좌파 역사관 곤란



 - 더 상세히 설명한다면.



 “이승만 정권에 대해선 나도 완전히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현실이 세계적 수준의 냉전 과정에 분단됐는데, 이걸 오늘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압도적 농업국가였고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는 데다 거의 전쟁 상태였던 시기에 서구 민주주의를 왜 못하느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해방 후의 현실을 감안하면 역사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백년전쟁’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업적을 놓고도 미국이 아이디어를 다 제공한 것이라고 폄하했다.



 “아이디어를 미국이 제공했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 다시 말해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 실천적 리더십을 평가하는 것이다. 박정희 모델은 완전히 부정돼야 할 모델이라는 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지만 나는 상당히 평가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제대로 안 되었으니까 민주화 세력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 아닌가, 그렇게 지나온 것이 우리 현대사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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