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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인력·선례 없다' 공무원들 이렇게 'NO'하죠

중앙일보 2013.04.24 00:56 종합 30면 지면보기
‘세상은 사람이 바꾸고 사람은 교육이 바꾼다.’ 윤은기 전 원장의 말이다. 그는 “공무원 교육이 변해야 국정운영도 성공한다”고 했다.


“삼성의 힘은 삼성인력개발원에서 나옵니다. GE의 경쟁력도 크로톤빌 연수원(Crontonville, 뉴욕주 오시닝시 허드슨 계곡에 있는 GE의 직원 연수원. 세계 최고의 경영인재 사관학교로 불린다)에서 나오죠.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어요.”

퇴임 윤은기 공무원교육원장
"혁신 꺼리는 건 조직의 문제 장·차관이 무한 책임져야"
'시테크' 전문 첫 민간 수장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듬해인 1949년, 나랏일을 맡을 이들의 소양을 함양하기 위한 기관이 설립됐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이다. 60년 역사에서 첫 민간인 출신 원장으로 임명(2010년 5월)돼 최장수 재임한 윤은기(62) 전 원장은 ‘공무원=국가 발전 에너지’란 점을 강조했다. 3년 동안 수만 명의 공무원을 만났다는 그를 퇴임 하루 전인 지난 17일 과천의 교육원에서 만났다. ‘시(時)테크’를 앞세운 경영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린 그는 원장에 임명됐을 때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기업과 학교 교육, 공무원 교육까지 맡아 교육 사이클을 다 도는 인사가 돼보라는 제안에 흔들려 원장직을 맡았다”고 했다. 사이클을 한 바퀴 돈 그에게서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 수많은 공무원들을 만났을텐데.



 “공무원, 이 사람들이 잘하면 정부 전체 신뢰가 올라가지만 잘못하면 대통령이 욕을 먹는다. 아무리 말직이라도 ‘말단’ 공무원으로 비하해선 안 된다. 현장 공무원이다.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나현공’과 ‘국가전략세미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7~9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나현공은 ‘나는 대한민국 현장공무원이다’를 줄인 말이다. 지금은 전 부처에서 확대 실시 중이다. 국가전략세미나는 실·국장급 고위공무원 1500명이 대상이다. 부처간 장벽을 없애기 위해 10대 국정과제를 함께 공부한다. 그래야 협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 내부 반발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변화·혁신은 정말 어렵다. 이들이 ‘노’(NO)하는 근거는 세 가지다. ‘예산이 없다’ ‘인력이 없다’ ‘선례가 없다’. 하려는 사업은 좌절된다. 근데 이유가 있다. 원래 하던 일이면 문제가 생겼을 때 감사에서도 관대한 처분을 받지만, 새로운 일은 기획한 사람이 흠뻑 뒤집어 쓴다. 그러다보니 ‘최초’를 무서워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다. 세상은 미래와의 싸움인데…. 장관 등 정무직이 무한책임을 지고 공무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혁신을 할 수 있다. 창의적인 정책, 빠른 행정서비스도 정무직 공무원들의 무한책임이 바탕이 돼야 한다.”



 - 한국의 행정서비스가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도 있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보다 낫다.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수준엔 아직 못 미친다.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 중소기업 사람들을 만났다. ‘불친절 해도 좋으니 빨리만 해달라’고 하더라. 자꾸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말고 고객 눈높이에 맞출 생각을 해야 된다. 후진국의 비리는 대부분 ‘급행료’에서 발생한다. ‘빠르게’와 ‘공정하게’는 동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각 공무원의 일처리가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래서 교육할 때 항상 ‘더 크게(생각하고), 더 빠르게(행동하고), 더 공정하게(처리하라)’를 강조했다.”



 - 공무원 교육원의 기능은 어떤가.



 “삼성의 힘은 삼성인력개발원에서, GE의 힘은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복심’을 인력개발원부원장으로 보낸다. 원장은 이 회장이 맡는다. GE 연수원도 잭 웰치가 헬기를 타고 가서 강의할 정도로 중요한 기관이다. 중앙공무원교육원도 그렇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장·차관이나 훌륭한 강사들을 불러 눈치보지 않고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장을 부총리·장관급으로 격상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기업의 연수원이 ‘기업문화와 지향점’을 끊임없이 교육하는 것처럼 교육원도 공무원들에게 ‘국가의 가치’ ‘국정과제’를 교육해야 한다. 공무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일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 퇴임 후엔 무슨 일을 할 건가.



 “세 가지다. 일단은 대학으로 가 강단에 다시 설 계획이다. 자칭 ‘대한민국 1호 공무원 홍보대사’도 할 생각이다. 비판도 많이 했지만 공무원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하고 헌신적인 인재들이다. 공무원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다.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 100명을 모아 ‘백강포럼’(100인 강사 포럼)도 만들고 싶다. 정치색·진영논리 없는 사람들을 모아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글·사진=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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