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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경제팀, ‘창조경제’ 찾다 길을 잃다

중앙일보 2013.04.24 00:38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 운동량과 열량을 알려주는 운동화 2) 식물을 베란다에 키울 때 일정 시간이 되면 물을 주는 과학기술이 결합된 장치 3) 과학기술을 이용해 층간소음을 줄이는 방법 4) (외부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꽃의 해외수출 5)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력이 풍부한 융합형 인재 6) 싸이의 ‘젠틀맨’.



 정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창조경제’의 예다. 이렇게 구체적인 예시를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창조경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박 대통령이 직접 밝힌 ‘창조경제’의 정의를 들어 보자. 박 대통령에 따르면 “창조경제란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제 창조경제가 손에 잡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JTBC의 토크쇼 ‘썰전’의 진행자는 “요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며 “그것은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창조경제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그 후로도 정부 내에서 부단히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22일 각계의 ‘창조경제’ 전문가들을 불러 ‘1차 창조경제 종합토론회’를 열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창조경제의 신비로운 모습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교수는 “창조경제의 개념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며 “소위 ‘SKY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창업했다 망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 경제, 대기업의 발목을 안 잡는 경제, 스티브 잡스가 아닌 사람들도 대박을 내는 경제, 실패가 창조의 밑천이 되는 경제가 창조경제”라고 설명했다(동아일보 4월 23일자 B4면). 이렇게 설명해줘도 개념이 잡히질 않는지 다른 참석자는 “창조경제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비(非)창조적”이라며 “창조경제의 개념을 논의하는 것보다 창조경제라는 목적을 실현할 수단을 논의할 때”라고 했다. 창조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는 것이다. 토론회가 1차인 것을 보면 창조경제 규명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토론은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그런데 온 나라가 창조경제를 찾아 헤매는 사이 새롭게 창조하려는 경제는 자꾸만 고꾸라지기만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엔저(低) 공습에 수출기업이 비명을 지르고, 경제성장률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기업은 돈을 쌓아놓은 채 투자를 않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수출과 내수(투자와 소비)가 멈추면 경제성장이 멈추고, 성장이 멈추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은 묵묵부답,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사실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기를 살린다며 추가경정 예산안을 제시했고,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개별조치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효과는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 정도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인지, 살린다면 경제가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국경제 전반의 부진을 털어내고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획기적이고 종합적인 청사진이 없는 것이다. 마치 총론(總論)은 없이 각론(各論)만 산발적으로 내놓는 꼴이다.



 경제전반에 대한 밑그림이 없으니 개별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틀리고, 심지어 서로 충돌하기까지 한다. 한편에선 기업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규제를 과감하게 풀겠다면서, 다른 편에선 경제민주화의 후퇴는 없다며 규제를 강화한다.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한다면서 동시에 세수확보를 위해 기업에 부담을 줄 게 뻔한 세무조사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미 편성된 지출예산은 대폭 줄이겠다면서 공약사항인 추가적인 복지지출은 차질 없이 이행하겠단다. 경제팀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경제민주화’와 ‘경기 활성화’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모든 정책에는 다 나름대로의 근거와 필요성이 있다. 경기 활성화도 필요하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복지를 늘리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고 올바른 방향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재원의 한계와 시급성의 정도, 정책의 연관성과 효과 등을 따져 시행여부와 우선순위를 가려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의미 있고 좋은 정책이라고 무작정 다 하다간 경제는 뒤죽박죽 엉키고 재정만 바닥난다. 경제학에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란 게 있다. 개별적으로는 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경제행위가 다 합쳐 놓고 보면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총론은 없이 각론만 난무하다 보면 합성의 오류에 빠질 공산이 크다.



 현 경제팀은 대선 과정에 기여한 바가 없는 관료 출신들로 꾸려졌다. 이미 짜여진 정부조직의 틀에 끼어들다 보니 경제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해볼 여지도 없고 말발도 서질 않는다. 모두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다. 대통령이 ‘공약의 완전이행’을 말하면 그대로 복창하고, ‘창조경제’를 강조하면 그 뜻을 해석하느라 바쁘다. 경제에 총론이 없고 산발적인 각론만 보이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한국경제는 점점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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