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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는 존재, 그 미숙함의 시작은 …

중앙일보 2013.04.24 00:32 종합 23면 지면보기
요시모토 바나나의 도쿄 사무실 입구. 파란색 타일 위에 노란색 바나나와 바나나의 영문 첫글자인 B로 된 조각품이 유머러스하다. 오랜 친구를 만나듯 편안한 복장으로 나타난 그는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민음사]
일본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골목을 헤맨 끝에 파란색 타일을 붙인 외벽에 앙증맞은 노란색 바나나와 알파벳 B자 모양 조각품이 붙은 집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키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49)의 사무실이다. 최근 장편 『사우스포인트의 연인』(민음사)을 낸 그를 만났다.


신간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감수성 강한 사람들 위로했으면
이승기가 주인공인 소설 연재 중

 소설은 미국 하와이 사우스포인트가 배경인 첫사랑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를 첫사랑으로 품은 소녀 테트라와 소년 다마히코는 헤어진 뒤 우연히 만나 사랑을 이룬다. ‘시한부 연인’인 하치와 마오의 이야기인 초기작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속편 성격이 강하다.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등장인물이 너무 젊다 보니 인생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단을 내렸죠. 하지만 인생은 쉽게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소설에서 “남자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미숙한 부분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만나고 싶어도 못가고 머릿 속으로만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소년 같은 모습을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와이는 소설의 곳곳에 스며있다. 하치와 마오, 테트라와 다마히코의 사랑이 기적적으로 이뤄지는 사우스포인트에서는 모든 기억이 없어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올라니 궁전에 유폐됐던 릴리우오칼리니 공주가 친구들이 보내준 퀼트로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에 감동받아, 여자 주인공 테트라를 퀼트 아티스트로 설정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작품도 따뜻하다. 그의 감성적 문체와 따뜻한 시선은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치유소설’을 유독 많이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감수성이 강해 힘들어 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고 창조적인데 고립된 경우가 많죠.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제 책이에요.”



 그는 상처를 극복하는 힘은 이해받았다는 느낌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글이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건 그 지점이다.



 “사실 제 작품은 줄거리만 보면 ‘그게 뭐 어때서’라는 식의 소설이 돼 버려요. 그렇지만 생활 속에서 느끼는 많은 것, 느낄 수 있는 것임에도 그걸 다 느끼면 살기 힘들어서 무시했던 것을 세세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들이 제 글에서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된 뒤 그의 작품은 더 따뜻해졌다. “소설적으로는 주변인물에도 깊이를 주게 됐어요. 중심인물이 아니라고 딱 자르지 못하는 거죠. 실생활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에게도 부모는 있지’라고 생각하게 됐고요.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작가로서 그의 힐링은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가수 이승기의 열렬한 팬인 그는 일본 잡지 ‘앙앙’에 이승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우리, 연애할까’를 이 달 연재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10월까지 싣는다. 그는 “(이승기가) MBC 드라마 ‘구가의 서’ 촬영 때문에 매우 바쁘면서도 e메일로 질문을 보내면 성실하게 답변해 줘 큰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그에게 남은 바람은 무엇일까.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으면서 ‘별거 없네, 쓱 읽었네’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위기에 처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이름이나 작품이 기억나지 않아도, 내 소설 속 한 구절이 떠올라 도움이 됐으면 해요.”



도쿄=하현옥 기자



◆요시모토 바나나=1987년 등단했으며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키친』은 200만부 넘게 팔리며 세계 30여개국에 번역됐다. 열대 지방에만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해 ‘바나나’라는 필명을 쓴다. 『왕국』과 『안녕 시모키타자와』, 『막다른 골목의 추억』 등 여러 소설이 국내에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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