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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직업은 ‘스펙’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3.04.24 00:29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공기업 신입사원 A: 요즘 사표를 품고 다닌다.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神)의 직장. 사원증을 목에 걸고 거리를 걷다가 목줄 없는 또래들을 보면 절로 가슴이 펴졌다. 사원증 목줄은 취업난 시대의 신분 증서이기에. 하지만 그 기분은 몇 달을 가지 못했다.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는 수많은 전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TV 드라마(직장의 신) 대사를 되뇌며 로스쿨 지원을 고민 중이다.



 로스쿨 교수 B: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당부하곤 한다. “시장을 개척한다는 각오로 번듯한 곳만 바라보지 말고 개인 변호사 밑에서 2~3년 고생해보라”고. 하지만 학생들 안중엔 로펌과 대기업밖에 없다. 며칠 전 한 50대 변호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왜 젊은 변호사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겁니까. 지방 대도시에도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50만원에 고소장 써주면 ‘나 홀로 소송’을 하다가 사건 맡아달라고 다시 찾아와요. 그때 400만~500만원 받고…” 이런 말 전한다고 학생들이 귀를 기울일까. 그는 회의적이다.



 A처럼 고층빌딩 회전문 안으로 진입했던 상당수 젊은이가 다시 인력시장에 나오고 있다. 이른바 ‘돌취(돌아온 취업 준비생)’ 현상이다. 개중에는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성장한 속칭 명문대 출신도 적지 않다. 이렇게 젊은 퇴직자가 속출하자 직장 내부에선 “회사에 오래 다닐 생계형을 뽑으라”는 경고벨까지 울리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제적으로 보면 웬만한 직장에서는 자신에게 투입된 비용을 뽑아내기 힘들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요람부터 대학 졸업까지 드는 비용은 3억896만원. 이마저도 평균액에 불과하다. 싱싱한 머리로 따져보면 당장 플러스, 마이너스가 판가름 난다.



 다른 한편에는 또 하나의 스펙 경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교·대학 시절의 ‘더 나은 스펙 찾기’가 직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주목받는 생(生)이었던 이들은 드라마 장면처럼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일 뿐 복사와 서류 정리로 하루를 보내는 부속품 신세다. 부장, 팀장에게 웃음을 지어 보여야 하는 감정노동도 싫다. 더욱이 나보다 못한 친구들이 잘나가는 걸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변호사가 더 이상 ‘개천의 용(龍)’이 되기 힘든 세상임에도 로스쿨에 줄을 서는 이유다. 로스쿨 입학 후에는 대형 로펌이나 사내 변호사, 법원 로클럭(law clerk)을 향한 무한 경쟁이 이어진다. 지난주 7급 공무원 지원을 둘러싼 로스쿨생들의 갈등이 이슈로 등장했다. 로스쿨도 이제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모든 책임을 청년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그들의 의욕을 끌어내지 못하는 기업 문화에도 문제가 있다. 언제까지 불필요한 업무와 소모적인 인간관계로 젊은 창의력을 죽여야 하는 걸까. 그러나 타잔이 줄을 타고 지나가는 식의 스펙 경쟁은 답이 될 수 없다. 일터에 고랑을 내고 끈기 있게 전문 분야를 경작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의 신’ 미스 김이 말한 대로 “회사는 생존을 나누는 곳이지,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 동시에 직업 자체가 스펙 쌓기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이웃 남자에게 빠져드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어느 날 이런 충고를 듣는다. “인생엔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Life has a gap in it, it just does). 그것을 미친 듯이 메워가면서 살 순 없어.” 사랑이든, 취업이든 끝없이 빈틈을 메우려는 건 옳은 자세가 아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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