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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소녀, 독일 유학하며 최고 연주자 꿈 이뤄

중앙일보 2013.04.23 04:00 4면 지면보기
가난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꿈을 위해 노력해 이뤄낸 이가 있다. 피아니스트 이유라(32·사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는 충남예고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음대를 거쳐 독일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자신의 모교인 충남예고에서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을 양성하고 있다. 18일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생은 아름다워] 이유라 피아니스트

“피아노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7살 때였어요. TV 광고에서 저와 비슷한 또래 아이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와 숲 속에서 피아노를 쳤죠. 그 아이가 너무 예뻐 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씨는 피아노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산 둔포면에 살던 살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피아니스트’라고 정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을 졸랐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피아노를 구입할 수도 레슨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이 다니는 둔포감리교회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조그만 시골 교회에서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줄 사람은 성가대 반주자뿐이었다. 그는 반주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랐고 피아노를 배웠다. 남보다 일찍 교회에 도착해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초등부와 중등부 예배 반주를 맡아 실전 경험도 쌓았다.



 “제 반주에 맞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았어요.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반주를 한 게 아니라 반주를 잘하기 위해 피아노를 더 열심히 쳤죠.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는데도 피아니스트가 된 데에는 반주 봉사가 큰 도움이 됐어요.”



 정식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이씨는 출중한 재능을 갖고 있긴 했지만 어려운 생활 형편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음악 공부를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 쌀이 없을 정도였어요. 제 형편에 예술 분야에 꿈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포기할까도 많이 고민했어요.”



예술고 진학, 꿈을 위한 더 큰 도전



아산 둔포면은 지리상 아산 외곽지역에 위치한 탓에 교육환경이 다른 곳보다 열악했다. 그가 예술 쪽으로의 꿈을 포기하려던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꿈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천안, 아산지역에 처음으로 설립되는 예술고등학교로의 진학이었다.



 “교회 반주자 선생님으로부터 충남예고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어요. 수도권 지역에만 있는 예고가 가까운 곳에 개교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더 없이 기뻤죠. 합격할 줄 몰랐는데 합격해 기쁨은 두 배가 됐어요.”



 충남예고에 진학한 그는 남보다 더 노력했다. 학교 문을 닫을 때까지 연습실에서 홀로 남아 연습했다. 열심히 노력하니 성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우수한 성적으로 충남예고를 졸업한 그는 중앙대학교 음악학과에 어렵지 않게 진학했다.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감사했죠. 학비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원해주시고 응원해주셨거든요.”



 이씨는 그런 부모의 지원을 등에 업고 대학 생활을 하며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바로 독일로의 유학이었다. 피아노 최고연주자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한 그의 마지막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힘들고 고달팠던 유학생활



그는 독일 유학을 위해 대학 때부터 착실히 돈을 모았다. 교양과목으로 독일어를 배웠고 어디 학교가 좋은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면 좋은지 등의 사전조사도 했다. 그리고 2005년 대학 때 모은 많지 않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독일로 향했다. 유학 시절 경제적 어려움은 더 컸다. 1유로(약 1500원) 쓰기도 아까웠다. 배가 고파 빵을 주워 먹은 적도 있었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몰래 탑승한 적도 있었다.



 “차비 아끼려고 무임승차를 한 번 했는데 역무원에게 걸려서 25배나 되는 돈을 물어줬어요. 다른 건 아껴도 그때부터 표 값은 아끼지 않았죠.”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것조차 그녀에겐 사치였다.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 멸치볶음을 연습 도중 먹었다. 그마저도 냄새가 날까봐 몰래 숨어 먹곤 했다.



 그런 과정 속에도 그는 중도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 아이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하며 돈을 벌었고 대학 과정 4년과 최고 연주자 과정 3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다짐을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을 모두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요.”



자신과 같은 꿈 갖는 후배 돕고 싶어



지난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을 응원해준 부모님과 지인들을 불러 단독 연주회를 개최했다.



 “연주회 당일에도 둔포교회에서 오전 11시, 2부 예배 반주를 다 마치고 서울로 향했어요. 긴장보다는 제가 그동안 배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분되고 기뻤죠.”



 연주회 때 그의 부모님은 이씨를 향해 힘껏 박수를 쳤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고 했다. 자신 또한 그런 부모님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그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땐 다른 부모만큼 많이 배우지 못한 자신의 엄마 아빠가 창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엄마 아빠가 자랑스럽고 감사하단다.



 “저와 같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자신감 없고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배운 인내와 성실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또한 피아노, 음악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죠.”



 현재 자신의 모교인 충남예고에서 후배들을 위해 가르치고 있는 이씨는 “기회가 된다면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 교육을 해주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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