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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0) 기우제

중앙일보 2013.04.23 00:54 종합 30면 지면보기
1977년 6월 가뭄으로 피해를 본 전남의 한 농촌을 찾은 고건 전남도지사(오른쪽)가 현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논을 파서 ‘집수정(集水井)’을 만들고 있다. 양수기로 물을 퍼서 농업용수를 담아두기 위해서다. [사진 고건 전 총리]


전남도 내에 육·해·공군을 합쳐 장성이 12명 정도 있었다. 이들은 휴일에도 임지를 떠날 수 없었다. 대신 주말이면 광주 송정리에 있는 공군비행장 안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며 ‘휴식 반, 대기 반’ 상태로 지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도지사가 군 장성 골프 모임을 주관해줬으면 한다는 얘기가 몇 사람을 거쳐 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도내 기관장들과 함께 ‘무등구락부’라는 월례 골프 모임을 만들어 군 장성들과 1년 넘게 어울렸다.

“비 올 때까지 … ” 도청서 야전침대 숙식 9일째‘후두둑’



 그들과 골프를 치기로 약속한 어느 토요일 오전. 나는 곧 골프장에 나갈 생각에 설레며 도지사실에 앉아 있었다. 가뭄이 들 기미가 보이던 1977년 초봄의 일이다.



 범택균 농정국장이 지사실로 들어왔다. 한해(旱害·가뭄으로 인한 재해) 비상근무령 발령안을 내밀었다. 이 서류에 결재를 하면 그 순간부터 지사도 비상근무에 돌입해야 한다. 자동으로 군 장성과의 골프 약속은 물 건너간다. 한창 ‘보기 플레이어(90타 정도 치는 수준)’로 골프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때였다.



 “그거 오늘 토요일인데 꼭 해야 하나. 월요일에 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범택균 국장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근무시간이 끝나고 퇴청한 나는 바로 관사로 향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차를 타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골프장이 있는 송정리 공군비행장으로 가는 길목에 극락교가 있었다. 다리에 못 미쳐 교통사고 현장을 봤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차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갔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다. 전동 양수기를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농민이 택시와 살짝 부딪혔고 두 사람이 다투던 중이었다.



 “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벌써 한해가 시작된 것이다. 농민이 전동 양수기를 자전거에 싣고 분주히 다닐 만큼 말이다. 골프장에 가서 경기를 시작만 해놓고 장성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지사실로 돌아왔다. 범택균 국장을 다시 불러 한해 비상근무령 발령안에 결재를 했다. 나는 그 후로 골프채를 다시 잡은 일이 없다. 바로 한해 비상대책에 돌입했다.



 전남은 해마다 한해에 시달렸다. 평야 지역에 가뭄이 안 들면 산간부가 말랐고, 평야와 산이 괜찮으면 섬 지역에 한해가 닥쳤다.



 10년 전에 파 놓은 인력관정(人力管井·사람 힘으로 판 우물)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훨씬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는 타설관정(打設管井·기계로 두드려 판 우물)으로 모내기용 농업용수를 개발했다. 신안군민들이 만든 소형 착정기계 신안 1호기와 2호기는 아주 실용적이었다. 대량 생산하기 위해 설계를 화천기공사에 맡겼고 신안 1·2호기를 모델로 한 착정기계는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가뭄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이어졌다. 광주 시내의 원로들은 “도지사가 무등산 산정 서석대에서 기우제라도 올려야 한다”고 걱정했다. 10년 전 한해 때 “지사 이름 ‘김보현(金甫炫)’에 불 화(火)자가 들어가서 가뭄이 든다”고 걱정하던 원로들이다. 광주·전남 지역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낮에는 현장에 나가고 밤에는 한해 대책을 세우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다. 무등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낼 시간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무등산 서석대가 아닌 서석동 지사실에서 기우제를 지내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비가 올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지사실에서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9일이 지났다. 야전침대가 영 불편해 지사실 바닥에 요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 3시쯤 잠결에 희미한 빗소리를 들었다. 침엽수인 히말라야 시다 나뭇잎에서 튕긴 빗물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박차고 일어나 창문 바깥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으로 꽤 굵은 빗방울이 느껴졌다. 얼마나 기쁘던지. 서석동 지사실에서의 기우제는 9일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고흥에만 비가 안 왔다. 모내기를 독려하려고 밤에 고흥으로 현장 시찰을 나갔다. 달도 안 뜬 깜깜한 밤, 밖이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논 옆에 차를 세운 뒤 창을 열어 귀를 기울였다. 모내기용 물을 댄 논에는 개구리가 모여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없으면 모내기가 안 된 거다. 나만 아는 모내기 현장 확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근본적 대책이 필요했다. 전남의 젖줄인 영산강 유역을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야 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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