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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유연한 장인, 브리콜뢰르를 대망하다

중앙일보 2013.04.23 00:50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2013년 수상자 이토 도요오는 건축 강국으로서 일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고 묻자 “건축가의 힘이 아니다. 시공 건설사의 힘이 크다. 건축가가 어려운 과제를 제시하면 장인(職人·쇼쿠닌)들이 달려든다”고 자신의 겸양을 내세우며 슬쩍 나라 자랑을 늘어놓았다. (4월 13일자 20면)



 우리나라의 건설산업도 비록 일본을 추격하고 있지만 양과 질에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해외 건설 규모는 세계 7위다. 이로 인해 벌어들인 돈은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보다 많다. 한국 엔지니어들의 기술 수준도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건설을 주도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828m 높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산업 기술력은 조선산업에서 더 강하다. 세계 선박 시장의 39%를 차지하며 한국 조선은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배를 만드는 기술과 집을 짓는 기술은 일견 달라 보이지만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연결 고리가 있다. 배는 움직이는 큰 집이다. 이렇게 보면 자동차는 움직이는 작은 방이다. 한국 자동차는 미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두 자리 숫자를 바라볼 만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공간을 만드는 기술의 양과 질에서 한국은 현재 단군 이래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큰 산업기술’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작은 생활기술’로 이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즉 세계적 산업기술 수준에 버금가는 일상 건축을 만들고 있는가?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는 1923년 출간한 『건축을 향하여』에서 집은 ‘삶을 위한 기계’라고 선언했다. 그는 배, 비행기, 자동차와 건축물을 대비시킴으로써 새롭게 등장한 기계 미학과 건축을 접목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뇌와 좌뇌, 이성과 감성은 도식적으로 융합되지 않는다. 영역과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장인이 있어야 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최고의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한 역사학자의 비유처럼 한곳을 깊이 파는 ‘고슴도치’와 여러 곳을 살피는 ‘여우’의 모습을 동시에 지녔던 다면성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다면적 장인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정립한 개념, ‘브리콜뢰르’와 닿는다. 사전적으로 브리콜뢰르는 손재주꾼을 뜻한다. 문명 세계의 엔지니어는 목적에 꼭 맞는 재료와 도구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한다. 반면 야생 세계의 브리콜뢰르는 한정된 재료와 도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현실을 헤쳐 나간다.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맥가이버와 같은 존재다.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병만족’을 언뜻 떠올릴 수도 있다. 산업전문가들은 융합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가 바로 브리콜뢰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공학과 미학의 다리를 놓는 브리콜뢰르가 절실한 분야가 건설산업이다. 건설산업은 사람 손에 의존하는 분야다. 스마트폰과 같은 제품은 기계나 로봇을 이용하여 정밀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지만 건설은 첨단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끝이 닿아야 한다. 현장 상황에 따라 재료와 공법은 응용되고 변용되어야 한다. 건설산업에서 브리콜뢰르는 건축가를 닮은 엔지니어, 엔지니어를 닮은 건축가, 엔지니어와 건축가 사이의 컨설턴트, 혹은 현장의 숙련공일 수 있다. 이들이 주어진 조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용(轉用)하는 역발상을 할 때 고부가가치의 결과물이 나온다.



 건축가 이토 도요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 건축은 우수한 인재는 있지만 사회가 새로운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일본은 비교적 새로운 걸 용인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건설산업의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이 세계 최고의 건축 강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일 것이다.



 한국의 건설산업은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파장은 넓고 크다. 통계상의 수치에 잡히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건설의 울타리 안팎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기를 희망으로 바꿀 브리콜뢰르도 분명 이들 가운데 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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