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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불통의 책임

중앙일보 2013.04.23 00:33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백악관 웨스트윙 1층엔 제임스 브래디룸이 있다. 백악관 대변인이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 곳이다. 1981년 정신이상자인 존 힝클리가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했을 때 총에 맞아 불구가 된 제임스 브래디 대변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브래디룸은 청와대 브리핑룸의 10분의 1 정도 크기다. 의자도 49개에 불과하다.



 워싱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래디룸의 빈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웬걸. 대변인이 곧 입장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옆방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늙수그레한 백인 기자는 “미안하지만 이 자리는 내 자리”라고 했다. 다른 빈자리에 앉으려 했더니 또 다른 기자가 거긴 내 자리라고 했다. 알고 보니 모든 의자에는 임자가 있었다.



 지금의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타임지의 워싱턴지국장 출신이다. 기자 출신인 그는 하루 중 가장 긴장될 때를 브래디룸에 들어서는 순간이라고 했다.



 카니가 모두발언을 끝내면 맨 앞줄 한가운데 앉은 AP기자가 첫 질문을 한다. ‘할머니 기자’ 헬렌 토머스가 유대인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그만둔 이래 첫 질문의 영광은 AP기자에게로 넘어갔다. AP기자의 질문을 시작으로 백악관 기자들은 카니 대변인을 향해 속사포 질문을 쏟아낸다.



 설전을 주고받는 것도 예사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기 전 브리핑에선 “역대 대통령이 다 했던 크네셋(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을 안 하는 이유가 뭐냐”를 놓고 10분이 넘게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안 하는 거냐, 못하는 거냐”는 추궁에 카니 대변인은 “제발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고 사정했다.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다.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의 호화 생일파티 논란, 대통령의 토요일 골프 논란 등이 생중계되기도 한다.



 백악관 브리핑은 한번 시작하면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스턴마라톤 테러사건을 다룬 17일 브리핑은 낮 12시14분에 시작돼 1시4분에 끝났다. 시쳇말로 뽕을 뽑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하려다 보니 카니 대변인은 늘 두툼한 자료를 뒤적거린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부끄러웠던 순간이 많다. 시간이 지난 뒤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은 물어봤어야 할 걸 못 물어봤던 때다.



 박근혜정부의 청와대가 불통 논란에 싸여 있다. 불통 앞에는 보통 고집이란 수식어가 달린다. 하지만 불통의 책임은 정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궁금증을 풀고, 의혹을 캐야 할 기자들에게도 있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알 권리를 행사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 3분 만에 끝났다는 건 적어도 기자들에겐 불명예다.



 퓰리처상을 만든 언론인 조셉 퓰리처는 “무엇이든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결코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지금 의무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가.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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