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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남북 국지전 예고했던 기초의원

중앙일보 2013.04.23 00:33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윤호
논설위원
“내년(2012년)에 한나라당이 권력 유지하기 위해서 국지전까지 예상하고 있다…(중략) 그것이 국가재난이라고 이야기하고, 지역재난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할 법한 이 말, 누구 입에서 나왔을까. 2011년 5월 호남 지역의 한 기초의회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군소야당 의원이 했다. “민주당 고위급 국회의원이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라며 ‘카더라’라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실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짐작된다. “지난 6·2 지방선거 때 천안함 사건 터졌어요” 하며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이어 한 걸 보면 그렇다.



 이게 유언비어 유포와 뭐가 다른가. 지금도 이 의회 홈페이지엔 그의 발언록이 떠 있다. 기초의원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기초의회 의원들의 수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회의록을 들춰보면 절로 혀를 찰 지경이다.



 예컨대 한 야당 소속 기초의원은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국민과 국가를 송두리째 미국에게 떠 바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폭거”라고 매도했다. 그런가 하면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를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시켜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며 회의석상에서 당선사례를 한 여당 의원도 있다. 사사건건 여당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무식한 한나라당’이라는 수식어를 입에 올리는 야당 의원도 있다.



 이처럼 걸러지지 않은 거친 표현으로 정치공방을 벌이는 건 여의도 국회 뺨친다. 본인들은 그런 맥락의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하겠지만, 어떤 의도였는지는 뻔하다. 기초의회 홈페이지 아무 곳이나 접속해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을 색인어로 넣어 회의록을 검색해 보라. 기초의원들이 정당 이름을 쓰는 용도는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소속 정당을 밝히거나 자기소개를 할 때다. ‘새누리당 또는 민주통합당 아무개 의원입니다’로 검색되는 게 대다수다.



 다른 하나는 주로 상대방 정당을 비방하거나 서로 싸울 때였다. 싸움의 내용도 기초의회 본연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통일·안보·국가예산 등 기초자치의 영역을 크게 벗어난 사안을 둘러싸고 싸우곤 한다. 이념색이 부각되거나 정치선동에 가까운 발언도 간혹 끼어들어 주민자치의 현장을 혼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귀중한 세금·시간을 축내며 그런 짓 하라고 유권자들이 뽑아줬나. 그러면서도 해외연수, 의정활동비, 업무추진비와 같은 혜택은 다 누린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젊은이들 사이엔 “열심히 공부해 붙어봤자 부구청장·부시장급 예우 받는 구의원·시의원이 더 낫다”고 하는 이도 있다. 단순한 자조가 아니다. 기초의원들이 주민자치의 대표자가 아니라 또 다른 특권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경고다. 모든 기초의원들이 아프게 들어야 할 말이다.



 그 같은 기초의원들에게 정당의 존재는 뭔가. 선거철엔 공천 도장 받는 검문소요, 평소엔 소속을 드러내는 명찰 아니면 싸움박질의 수단이다. 이를 통해 정당은 어느새 여의도의 정쟁을 시·군·구에서 재탕, 삼탕시키는 매개체가 돼버렸다. 그럴 바에야 기초의회에서 정당이 왜 필요한가. 내년 제6회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손을 대야 할 부분이다.



 오는 24일 재·보선엔 3군데에서 기초의원을 뽑는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막상 기표소에 들어서면 헷갈릴 수도 있겠다. 서울 서대문구-마와 경기도 고양시-마에선 투표용지에 2번 후보부터 나온다. 경남 양산시-다의 경우 4, 5, 6번만 있다.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지 않아 1번이 없는 것이다. 결국 새누리를 새누리라 하지 못하는 여당 후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 공약을 무시한 채 두 곳에서 공천을 했다. 약속 위반이지만, 대선에서 이겼어야 공약을 지킬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 딱히 할 말도 없다.



 어쨌든 선택은 유권자에게 달렸다. 무슨 명찰을 달고 나왔든 여의도 흉내를 내는 후보는 일단 피하고 보자.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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