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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발레하는 노숙인 ‘벚꽃 엔딩’은 있어도 인생 엔딩은 없다

중앙일보 2013.04.23 00:29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빨간 상의를 입은 사내 여덟 명이 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편다. 두 명은 오늘 결석이다. 시작은 몸 풀기. 제임스전(54·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씨의 지시에 따라 주먹 쥐고 펴기를 반복한다. 윗몸 앞으로 굽히기.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힘들어!” 제임스전씨가 소리쳤다. 앉은 채 두 다리 쫙 벌리기. 제임스전씨는 거의 180도, 수강생 다리 각도는 어림잡아 40도에서 120도로 제각각이다. 길게는 20여 년을 길거리에서 지새우던 이들. 만약 입이 돌아갔대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였다. 굳은 몸을 갑자기 돌리고 굽히려니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나 쉬이 보지 마시길. 8명 중 5명은 작년 12월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발레리노로 당당히 참여했다. 창작발레 ‘꼬뮤니께’(작년 10월) 무대에 올랐던 이도 3명이다. 수강생은 전원 홈리스(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 판매원이다. 노숙에서 벗어나고자 잡지 판매를 자원했고, 내친김에 홈리스 발레교실도 찾았다. 매주 일요일 과천시민회관의 서울발레시어터 연습실에서 땀을 흘린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발레 신발 신으세요.” 교실에선 제임스전씨나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도 선생님, 노숙인도 선생님으로 불린다. 기본동작 훈련.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Memory)’가 흘러나온다. 앙바, 아나방, 앙오, 알라스공드. 구령대로 두 팔을 배꼽 아래에서 배, 머리 위로 올렸다가 양쪽으로 펼친다. “우아하게 하세요! 남대문시장서 물건 팔 때처럼 하지 말고.” 이어 몸짓 언어 익히기. “나는, 너를, 사랑합니다.” 손을 가슴에 댔다가 앞으로 뻗고, 다시 두 손을 가슴에 모은다. 스팟팅(spotting). 회전할 때 어지럽지 않도록 시선을 고정하고 재빨리 머리를 돌리는 기술이다. 이건 좀 어렵나 보다. 여기저기서 비틀거린다.



 홈리스 발레교실은 재작년 4월 문을 열었다. 수강생들은 허리가 펴졌고 주눅 들었던 시선이 똑발라졌다. 무엇보다 충만한 자존감이 그들을 기쁘게 했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파는 이민수(43)씨는 올해 방송통신대 관광학과에 입학했다. 강남역 6번 출구의 임진희(46)씨는 ‘꼬뮤니께’ ‘호두까기 인형’에 연속 출연했고, 홈리스 축구단 선수로도 뛴다.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의 오현석(43)씨는 곧 보일러기사 자격증이 생긴다.



 3시간에 걸친 연습을 지켜보고 나선 그제 오후. 시민회관 주변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이 절로 떠올랐다. 벚꽃은 곧 진다. 그러나 벚꽃은 엔딩이 있어도 ‘인생 엔딩’은 없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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