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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박정환, 칼을 뽑다

중앙일보 2013.04.22 00:31 종합 23면 지면보기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6보(61~69)=‘선치중(先置中) 후행마(後行馬)’는 아주 오래 된 바둑 격언이지요. 흑 귀 속으로 던져진 백△가 이 격언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수법인데요, 이렇게 먼저 치중해 놓고 반응 여하에 따라 나의 행마를 결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잔수’인 건 분명하지만 바둑이란 이런 잔수가 중요합니다. 큰 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는 법이니까요.



 구리 9단은 고민 끝에 61로 꽉 이었습니다. 고수답지 않고 좀 둔탁하지요? 그렇습니다. 구리 9단 본인도 빈삼각이 두 개나 만들어지는 이 수를 얼마나 피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었네요. ‘참고도1’ 흑1이 유식한 응수법이긴 하지만 이때는 백2가 급소라서 결국 3에 이어야 합니다. 이 형태는 훗날 A의 급소를 한 방 얻어맞게 되면 삶의 궁도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61을 본 박정환 9단은 62로 즉각 귀를 위협합니다. 귀는 받지 않으면 수가 나겠지요. 그러나 구리는 63으로 씌워 호탕하게 백의 엷음부터 추궁합니다. 이런 게 구리의 기세지요. 구리는 참는 형이 아닙니다. 박정환은 잘 참는 편이지요. 나이는 어리지만 그의 바둑에서는 때때로 인고의 고통이 묻어나곤 하지요. 한데 박정환이 이 대목에서 맹수로 돌변합니다. 64로 어깨를 짚더니 66, 68로 절단해 갑니다. 예리한 수단입니다. 잘 참는 박정환이 칼을 뽑아 들자 그 칼끝이 좀 더 섬뜩하게 다가옵니다(‘참고도2’처럼 끊는 것은 아무 수가 안 됩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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