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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지 않은 엄마’가 몰려온다

중앙선데이 2013.04.20 22:20 319호 30면 지면보기
퀴즈 하나. 사교육 메카인 대치동의 상가에서 제일 많은 곳이 학원이라면, 둘째로 많은 업종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주로 가는 패스트푸드점, 분식점, PC방 등을 생각했다면 틀렸다. 정답은 커피숍, 마사지숍, 그리고 피부과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란 점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엄마들이 커피숍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마사지숍과 피부과에서 자신을 돌본다. 엄마들은 이제 자동차 안에서 학원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기보단 자녀만큼이나 자신을 챙길 줄 아는 ‘새로운 엄마’로 진화했다.

 이런 ‘엄마들의 세대교체’에는 인구학적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에 태어나 왕성한 소비를 누렸던 젊은 엄마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엄마 같은 엄마’의 모습에 반기를 든다. 비록 자기 자신은 엄마의 희생을 통해 자라났어도 말이다. 소비자들의 ‘현재지향적’ 특성이 점차 강해지는 것도 엄마들의 변화에 일조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 이들 엄마의 생각이다. 과거에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대신 노후를 의탁하는 일종의 도덕적 교환관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녀에게 봉양을 바라는 간 큰 부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엄마들의 이런 변화가 산업계에 불러올 변화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이러한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20·30·40대 등 세대별로 유사한 성향을 가졌다는 가정을 전제로 마케팅 전략을 짠다. 이런 ‘세대론’에 ‘시대론’을 덧붙여 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30대 소비자들이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들은 문화까지도 상품화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첫 세대다. 이들에게 모든 문제는 ‘소비’로 치환될 수 있다. 외모가 망가지면 마사지숍에서 피부관리를 받거나 성형외과의 시술에 의지하는 식이다. 일부 업체들은 이런 엄마를 위한 상품을 발 빠르게 내놓기도 했다. 태교여행을 떠나는 예비 엄마들이 증가하자 국내 한 항공사는 ‘프리맘(PreMom) 서비스’를 기획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둘째는 엄마와 자녀의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상품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이는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자녀에게 도움이 되면서 엄마의 자아계발에 기여한다면 금상첨화다. 영국 런던의 클래펌 극장은 아기가 있는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올 수 있는 영화상영 시간을 일반 관객이 별로 없는 평일 낮 동안 운영하는 ‘릴맘(Reel Mom) 프로젝트’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아기와 엄마 ‘양자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독일 라이젠탈사에서 만든 ‘마더앤차일드백(Mother and child bag)’은 쇼핑하는 동안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엄마의 손잡이는 가방 상단에, 아이의 손잡이는 하단에 부착했다. 아이와 엄마가 쇼핑시간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한 작은 배려다. ‘레고’나 ‘헬로 키티’처럼 엄마가 어렸을 때 인기 있었던 캐릭터 제품들이 다시 부상하는 것도 엄마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자녀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는 차원에서 양자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변화가 가져올 파급효과를 예측하는 일도 중요하다.

  엄마의 희생으로부터 벗어난 자녀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주체적인 소비자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영역을 모방하는 ‘어덜키드’ 제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기를 끌고 있는 ‘어린이용 화장품’과 ‘어린이용 주방놀이세트’는 자녀들의 소비영역이 어른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엄마의 변화는 가계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지위와 위치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모든 소비재의 70% 이상을 여성이 구매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엄마가 등장함에 따라 앞으로는 아빠도 새로운 구매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자녀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북유럽형 아빠’를 소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가족단위 캠핑이나 해외여행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달라진 엄마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난도 교수와 함께 『트렌드 코리아 2013』을 썼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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