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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내려놓는다는 것

중앙선데이 2013.04.20 22:43 319호 27면 지면보기
가곡 ‘산 넘어 남촌에는’을 들으면 4월은 진달래의 향기가, 5월은 보리 내음이 으뜸이다. 왠지 남촌에 남풍이 불 것 같아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나 만나야 할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나도 현대인의 고독을 체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옛날 초의선사(1786∼1866)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주장한, 시대를 앞서간 스님이다. 어느 날 제자가 물었다. “스님, 세상에서 차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언제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차 맛은 천차만별이다. 굳이 제일 맛이 있는 차라면 한마디 하겠다.” 제자들은 가만히 차를 따르면서 기다렸다. “차 맛을 말로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난 ‘봄빛이 언뜻 스쳐간 맛’이 최고라 친다.” 이 얼마나 오묘한 맛의 표현인가. ‘天心洞徹月中間(하늘 맘은 달 중간에 깊숙이 사무치다)’. 요즘 같은 벚꽃 지는 밤 읊어보는 정산 송규 종사의 멋진 시구와 벗할 만하다.

살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지금도 나와 대화하거나 안부를 묻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서 멀어졌거나 내가 그를 멀리했거나 둘 중 하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판단을 한다. 판단 기준은 내게 이로운 부분이 있는가, 내게 손해는 가지 않는가다. 하지만 ‘내려놓기’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려면 큰일에 맞서 자신을 포기하는 게 필요한데, 이런 내려놓기를 통해 사람은 크게 성장한다.

물론 이득 앞에서 내려놓음, 인연 앞에서 내려놓음, 그리고 명예 앞에서 내려놓음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실행한 사람들은 결국 ‘새로 태어남’을 느끼게 된다. 홀로 남겨진 내려놓음은 우주의 혼이 함께하는 절체절명의 에너지로 다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침 쌀쌀한 날씨 덕에 내려놓지 못하고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안타까운 벚꽃들을 봤다. 활짝 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지금 떨어지기도 아까운, 시간 속에 묶여 있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면서 왜 꽃이 떨어지는가에 대한 상념이 들었다. 하나는 나무와의 결별이다. 결별이라는 내려놓음을 통해 온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둘째는 아름다운 소멸이다. 내려놓기와 소멸의 적정(寂靜)이 무상을 연출한다. 또 다른 꽃잎다운 행위다. 셋째는 새로운 잎새의 생성이다. “무심한 꽃들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떨어지는 꽃의 신비로움은 스스로 내려놓음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경험에서 이뤄진 것과, 경험은 없어도 ‘이건 아니다’라며 처연하게 내려놓는 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경험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고 착각한다면 인간은 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험이 없지만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인간은 크게 성장한다. 인연도 마찬가지다. 아니다 싶어서 인연을 맺지 못하는 것과, 이런 인연은 애당초 나하곤 상관없다고 내려놓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 지혜라는 이름으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인간의 삶은 한없이 불편하고 부박해진다. 때론 판단하기보다, 지혜롭기보다 그저 순수하게 속아주며 사는 것이 오히려 깊은 여운이 있지 않을까.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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