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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잡는 건 바이러스 …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살 길

중앙선데이 2013.04.20 22:56 319호 25면 지면보기
2007년 9월 콩고의 한 마을.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발생했다. 전염된 사람들은 눈과 귀에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환자 264명 중 186명이 숨져 치사율이 무려 71%에 달했다. 후에 괴질의 원인은 에볼라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감염자 대부분은 마을 추장의 장례식에 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죽은 이의 시신을 닦는 전통 장례 의식을 하다 감염됐고 괴질이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된 것이었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④ 바이러스와 전쟁

그나마 괴질이 더 이상 전파되지 않은 것은 바이러스가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서만 감염되고 공기로는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인플루엔자, 예를 들면 신종 플루 같은 확산력을 가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최고의 의학과 과학을 자랑하는 21세기지만 인류는 바이러스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외투에 있는 단백질은 H와 N 유전자다. 2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왼쪽)가 숙주인 박테리아(오른쪽)의 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3 1918년 5000만 사상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H1N1). 알래스카에 매장된 당시 사망자에게서 바이러스를 분리해 확인했다. 이 바이러스는 2009년 신종플루 때 다시 유행해 전 세계 인구의 10~20%를 감염시켰다. 4 인체 면역세포(적색)를 파괴하고 나오는 에이즈 바이러스(녹색).
바이러스의 어원은 라틴어의 독(virus: 毒)인데 반드시 어딘가에 들어가 빌붙을 곳, 즉 숙주(host)라고 부르는 ‘동반자’가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숙주를 바이러스의 ‘동반자’라고 불러도 될까. 바이러스는 들어가 사는 처지이면서도 주인인 숙주를 때로는 무자비하게 죽이는 킬러에 가깝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가장 작은 크기의 생물체이다. 바이러스 1000마리를 길이로 붙여놔도 가는 머리카락의 100분의 1 굵기에 못 미친다. 바이러스는 구조도 간단하다. 단백질로 만들어진 외피 내에 DNA 혹은 RNA 유전자가 들어 있다(사진1).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에는 바이러스가 들어가 살고 있다 할 수 있다. 바닷물 한 방울에도 2억 마리 정도의 바이러스가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이러스의 종류가 1400여 종 정도라지만 얼마나 더 많은지 아직 모르고 있다. 수많은 생물체가 살고 있는 정글에 존재할 바이러스의 수와 종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바이러스 역시 모든 생물체의 공동 목표인 자손 퍼트리기를 위해 두 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다. ‘치고 빠지기’ 아니면 ‘들어가 버티기’다. 치고 빠지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숙주가 급성 병을 앓게 만든다. 독감의 원인인 인플루엔자나 홍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체 세포에 침입해 자신을 수백 배로 복제한 뒤 세포를 부수고 튀어나와서는 또 다른 세포를 공격한다. 이런 종류는 공격이 끝나면 ‘잠수’를 타는 악당들처럼 숨어 지내며 또다시 적당한 숙주를 공략할 기회를 노린다.

이런 공격적인 바이러스에 비해 숙주의 몸에 아예 머무르는 바이러스는 급성 질환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도 숙주가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에이즈나 B형 간염 보균자의 바이러스는 일종의 ‘공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 중에는 ‘치고 빠질지’ 아니면 ‘잠시 공존할지’를 결정할 때 숙주의 상황을 고려하는 약삭빠른 놈도 있다. 박테리아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는 먹을 게 많으면 상대방을 파괴해 순식간에 수를 늘린다(사진2). 하지만 ‘동료’가 많아 먹을 게 적을 때는 활동을 자제하고 숙주에 자기 유전자를 삽입시켜 놓고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 ‘동료’가 줄어들면 기지개를 켜고 숙주 세포를 공격한다. 이렇게 대기할 때 이놈들은 다른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자기 먹을 것은 철저히 챙기는 셈이다. 이외에 또 다른 교묘한 전략은 자기 명찰을 만드는 유전자를 바꾸는 일이다.

바이러스 생존법, 치고 빠지기와 버티기
2013년 4월 11일 과학잡지인 ‘네이처’는 최근 중국에서 발생, 4월 16일 현재 63명 감염자 중 14명 사망자를 낸 조류독감(H7N9)이 서로 다른 3종의 조류 바이러스가 모자이크처럼 합쳐져 발생한 신종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신종 조류독감이, 바이러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9년 세계 인구의 10~20%를 감염시킨(실제 발병과는 다르다) 신종 플루(H1N1)와 같은 전파력과 2004년 환자 60%의 치사율을 보인 조류독감(H5N1)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변종은 아닌가?(사진 3) 지켜보는 지구인은 조마조마하다. 이 우려가 현실로 발생할 경우 1957년 200만 사상자를 낸 아시안 독감(H2N2)이나 68년 70만 명이 사망한 홍콩독감(H3N2) 같은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인체 면역 시스템은 ▶바이러스를 포착하고 종류를 확인해 내는 기억세포 ▶‘항체’인 공격용 단백질 ▶공격용 세포로 구성돼 있다. 변종은 면역을 해본 기억 세포가 없어 퇴치에 시간이 걸리고 사상자를 만든다. 독감 바이러스의 명찰은 H, N 두 가지다. H는 바이러스가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을 때, N은 세포를 파괴하고 나올 때 쓰는 유전자다. 현재까지 H가 17종류, N이 9종류가 보고돼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두 개의 조합수인 17×9, 즉 153종의 조류독감 변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조합 내에서도 H, N 자체가 또다시 H', N'로 변해 같은 조합에도 여러 변종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단단한' DNA가 아닌 '허술한' RNA 유전자로 구성돼 변이가 생기는 확률이 다른 바이러스보다 500배 높기 때문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끼리 유전자를 섞을 수 있을까? 만남의 장소는 어디인가? 에이즈는 침팬지의 몸에서 만났다(사진 4). 서로 다른 두 종의 원숭이 체내에 있던, 종류가 다른 에이즈 바이러스가 두 원숭이를 잡아먹은 침팬지의 몸속에서 혼합되었다는 것이고 그 후 인간과 접촉, 전파되었다는 게 유전자 추적 결과 확인되었다. 이렇듯 야생동물은 모든 바이러스의 주요 은신처이고 혼합기이며 확산의 주역인 것이다.

인간이 기르는 가축화된 동물도 바이러스 통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농가에서 사람들이 조류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 등을 접촉한 경우 등이다. 아무래도 가축들은 야생동물에게서 직접 감염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인간과 접촉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삶이 현대화됨에 따라 가축화된 동물들은 대형으로 사육되고 사람들도 도시 등 군락을 이루어 모여 살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사람 사이에 퍼지는 바이러스에겐 최적의 확산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파리로 날아가는 비행기나 여러 사람이 모여드는 공항은 한나절이면 바이러스를 먼 거리로 확산시키는 허브가 되는 셈이다. 브라질의 아마존 등 광활한 밀림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잘려 나가면서 그곳에 있던 야생동물, 그리고 태곳적부터 평화로이 지내던 바이러스가 뛰쳐나와 바깥세상의 인간에게 옮겨온 것이 재앙의 시작인 것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바이러스의 위협은 인간의 환경 개발 혹은 파괴의 반대급부라고도 할 수 있다.

바이러스 위협은 환경 개발·파괴 대가
인간은 불가피하게 바이러스와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다. 미국 성인의 30%는 인간 유두종(HPV)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면 감염 자체를 모를 만큼 특별 증상이 없다. ‘순한 바이러스’는 때로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세기 3억∼5억 인구가 사망한 천연두 바이러스의 치료제인 천연두 백신은 천연두와 유사한 ‘소의 천연두’인 우두 바이러스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를 치료한 셈이니 ‘적으로 적을 죽인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 할 수도 있다.

그 밖에 요즘은 바이러스를 약화시키거나(홍역 백신), 죽인 바이러스(독감 백신)나 바이러스의 일부(B형 간염 백신)를 백신으로 사용한다. 인간에게 아군이 되어 해로운 병균을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착한 바이러스’도 있다. 예를 들면 가축의 대장 질병 균인 살모넬라균만을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를 만들어 사료에 공급하면 대장 내 유해균만을 제거해 사료에 항생제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또 바다에서 발생하는 적조는 적색 미세조류가 갑자기 늘어나 발생하는데 최근 이 미세조류만을 죽이는 적조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이를 대량으로 배양해 적조지역에 살포한다면 현재의 적조 퇴치법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 역시 바이러스를 천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또 최근에는 암세포에만 침투하는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하는 연구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인간의 천연두 바이러스와 유사한 소의 우두 바이러스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침입을 잘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우두 바이러스에 암 치료 유전자를 넣어 인체에 주사하며 면역 문제 없이 암세포만 공격해 파괴할 수 있다는 게 최근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천연두 백신을 알려준 ‘착한 바이러스’에 암세포 공격용 무기를 탑재한 셈이다. 이런 내용은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실렸다

지금 인간은 바이러스와의 일전을 벼른다. 하지만 인간은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대신 지구에 존재하는 대등한 생물체로 대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열어야 한다.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다(삽화).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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