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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쉬쉬한 부실 수주 폭탄 마침내 터졌다”

중앙선데이 2013.04.20 23:09 319호 23면 지면보기
#1 2011년 5월 9일. 삼성엔지니어링은 사우디아라비아 마덴과 미국 알코아의 합작사인 마덴 롤링밀사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알루미늄 제품 생산설비 공사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공사금액은 5억9000만 달러. 완공 예정 시점은 2013년 7월.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금속 분야 공사를 새로운 대표 상품으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덤핑 경쟁으로 혼쭐 나는 건설업계

#2 2013년 4월 16일. 삼성엔지니어링은 1분기에 21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 2조5159억원에 순손실은 1805억원. 2003년 이후 10년 만의 적자다. 손실 원인을 회사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준공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프로젝트와 미국 다우케미컬 염소 생산설비 공사에서 3000여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을 반영했다. 이유는 새롭게 진출한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일부 프로젝트에서 원가율이 상승해서다.”

“1980년대만 해도 정부에서 해외 대형 공사 건이 있으면 국내에서 교통정리를 해줬다. 저가입찰을 하지 않아도 돼 해외공사는 대부분 알토란 같은 이익을 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시장이 얼어붙은 게 화근이었다. 대형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달려나갔다. 10억 달러 이상의 해외 공사에 국내 3, 4개 업체가 저가 경쟁 끝에 수주를 한 게 이제야 터진 것이다.”
그동안 해외 수주를 지켜보던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 최고경영자의 한마디다.

1분기에 5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낸 GS건설의 실적 쇼크 후폭풍이 거세다. GS건설에 이어 삼성엔지니어링까지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해외 공사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일단 따고 보자’ 식의 물량 위주의 수주가 적자 쓰나미로 되돌아 오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건설주는 줄줄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연관 조선ㆍ화학주의 하락까지 이어졌다. 수주를 기반으로 하는 업종에 대한 불안감에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서다. GS건설의 실적 쇼크 후 상당수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사업에 대한 긴급 손익 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은 현재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을 받고 있다. 앞서 GS건설은 올 1분기 535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과거 수주한 해외 플랜트 공사의 원가율 악화로 인한 손실을 올해 영업이익에 미리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송유관 공사에서 거액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요 건설업체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해외 수주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04년 75억 달러였던 해외건설 수주액은 2007년 398억 달러로 뛰었고 2010년에는 716억 달러로 치솟았다. 지난해는 649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비우량주택 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건설 시장은 급속히 침체했다. 건설업체들은 이를 타개하려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중동으로 몰려들었다. 국내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나섰다. 제한된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저가 수주로 이어졌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970~1980년대 해외 건설공사 수주 때는 한두 개 업체가 사실상 내정된 상태에서 경쟁하는 모습만 띤 경우가 많았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그렇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며 “당시 적자를 알고도 수주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 분석 능력·전문인력도 부족
이런 경쟁을 발주처가 교묘히 이용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임원은 “발주처가 A건설사에 ‘B사가 1억 달러 견적을 낸다는데 9000만 달러를 써내라’고 말한다. 그러곤 B사에는 ‘A사가 9000만 달러를 제시했으니 8000만 달러로 낮추자’는 식”이라고 말한다.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건설업체에 돌아온다.

이전에는 해외 발주처들이 공시 실적과 평가를 바탕으로 몇몇 업체만 입찰자로 초청했지만 최근에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참여할 수 있게 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수익률이 낮아지고 현지 사업여건이 악화하면서 사업을 접는 경우도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3억3000만 달러(3600억원) 규모의 사우디 살만베이 주택공사 계약을 해지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당초 사우디 제타 도시개발공사가 현지 금융기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연결시켜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데 PF도 안 되고 주정부의 승인도 늦어지면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건설 업계에서는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손실고백’을 용감한 결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두 회사는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있어 공개한 것이며 실제로 거액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고민만 하는 건설사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공사 손실이 단순히 저가 수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시장분석 능력, 전문인력 부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 이복남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건설사 내적으론 사업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상당하다. 해외 공사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복잡한데 일단 수주를 해놓고는 본사에서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현장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주 금액과 건수를 중시해 이를 인사평가에 반영하니 적자를 봐도 일단 따고 보자는 분위기도 강하다. 공사를 하면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결정한 식이다. 외적으론 우리 건설사가 당한 측면이 있다. 2009~2011년 한국 업체가 경쟁적으로 나서니 해외 발주처가 이를 이용했다. 한국 업체는 기술과 신뢰성이 높아 공사를 마무리하니 저가 수주를 유도한 것이다. 중동 수주전이 한창일 때 다섯 가운데 하나 정도는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적 쇼크가 이어지지만 해외 공사 수주는 우리의 주요 전략 산업인 만큼 이번 사태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업계 차원에서 이른바 ‘위기 대응팀’을 만들어 현재 진행 중인 해외 공사 현황과 수익률을 면밀히 분석하고 과당 경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당 경쟁 방지가 국제시장에서 자칫 담합으로 의심받을 수 있어 정부의 개입이 어렵다면 금융ㆍ기술지원ㆍ부당행위 처벌 같은 간접 방식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정보기획실장은 “업체 스스로 저가 수주를 자제하고 중동 중심인 해외건설 시장을 다변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그간 다 알면서도 말 못했던 것이 GS건설을 계기로 터진 것이다. 이번 실적 쇼크를 물량 중심에서 수익성 위주로 바꾸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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