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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좌파 스쿨' 모범생 차베스 … 그가 남긴 건 망가진 경제

중앙일보 2013.04.20 00:57 종합 18면 지면보기
볼리바르 탄생 229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특별 제작한 그의 3D 이미지를 공개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카라카스 로이터=뉴시스]



재집권 성공했지만 기로에 선 차비스모(차베스주의)
'남미 해방자' 볼리바르 가장 존경
내치는 무상복지, 외치는 반미·반서방

“차베스는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의 자주와 독립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로 기억될 것(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과 그가 섰던 입장은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의와 발전을 위한 투쟁은 부정할 수 없다(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이제 베네수엘라가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의 갈 길을 결정하게 하자(펠리페 칼데론 전 멕시코 대통령).”



 지난달 5일 우고 차베스(1954~2013)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각국 전·현직 국가원수들이 내놓은 평가들이다. 1999년부터 대선에서 4차례나 당선해 14년간 집권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좌파적 변혁을 이루고 남미 좌파연대의 맹주로 군림했던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린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중남미 세계에서 국내외에 뚜렷하게 기억되는 정책을 편 것만은 분명하다. 스페인어로 ‘차비스모’, 즉 차베스주의로 불린 그의 정책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얻은 수입을 바탕으로 국내적으로는 경제적 평등을, 국제적으론 반미 좌파연대를 추구했다.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들)’에 의해 ‘21세기 사회주의’로도 불리는 차비스모는 획기적인 정책이라는 칭송과 포퓰리즘 독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이런 차비스모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차베스는 생전에 중남미의 여러 혁명 지도자들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그가 언급한 스승 리스트는 중남미 혁명의 역사나 다름없다. 중남미 혁명의 전통이 정신적 지주를, 석유 수입이 물질적 바탕이 된 게 차비스모인 셈이다.



 중남미 혁명의 선구자 가운데 차베스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남미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다. 19세기 초 스페인 식민지였던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콜롬비아(당시 파나마도 포함)·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 등 6개국이 그의 손에 의해 식민지에서 독립해 공화국을 수립했다. 베네수엘라의 중산층 출신인 볼리바르는 젊은 시절 당시 유럽과 그 식민지의 중산층 자제들 사이에서 대유행이었던 ‘그랜드 투어’를 했다. 1805년엔 로마의 아벤타인 언덕에 올라 일생을 자유에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이곳은 기원전 494년 로마의 평민들이 귀족계급의 지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새로운 도시를 세운 곳으로 이후 독립과 반봉건의 상징이 됐다.



 볼리바르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그리고 왕정을 비롯한 봉건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했다. 더 나아가 신분제를 철폐하고 모든 인종과 계층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꿈꿨다.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와 몽테스키외의 영향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혁명의 옹호자에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구경하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1808년 스페인을 점령하면서 식민지 독립운동의 기회를 얻었다. 귀국한 볼리바르는 1810년 용병과 주민을 모아 봉기했으며 수십 년에 걸쳐 남미 각지를 해방시켰다.



 차베스는 이런 볼리바르를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나라 이름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볼리바르주의를 국정 지표로 삼았다. 볼리바르주의는 외치에선 남미의 경제적·정치적 자주를 추구했고 이는 반미·반서방으로 이어졌다. 내정에선 무상복지 정책이 핵심이었다. 차베스는 외국 자본을 내쫓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그 수입으로 빈곤층에 의료·교육·식료품 등을 무상 제공했다.



 유엔 라틴아메리카 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48.6%에 이르던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2011년 29.5%로 떨어졌다. 하지만 국유화와 무상분배 정책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물가와 실업률이 치솟았다. 산업 진흥과 장기 투자 없이 오일 달러를 복지에 쏟아부은 덕분에 정치적으로는 지지자 확보에 성공했지만 나라 경제는 엉망이 됐다. ‘연대 경제’라는 이름의 이 정책은 또 하나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난받는다.



 차베스는 ‘참여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풀뿌리 민주주의 참여를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지자들의 친정부 시위와 국민투표를 활용해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고 입법부·사법부까지 장악하며 장기집권의 정치적 야심을 채웠을 뿐이란 비난을 듣는다. 또 외세를 악으로 보고 철저한 반미주의를 펼치면서 식량·소비재 등 경제적 자급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생필품 부족과 인플레를 유발했다.



 남미 최초의 좌파 정치인 살바도르 아옌데도 차베스가 존경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외국자본의 추방과 산업 국유화 등의 정책을 배웠다. 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정권과 목숨을 함께 잃은 아옌데는 칠레가 민주화되고 피노체트 일당이 군사정권 당시의 반인륜적 범죄로 단죄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주화된 칠레는 아옌데의 정책 대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복지를 가미한 새로운 정책으로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을 이뤄가고 있다.



 차베스는 또한 쿠바 사회주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평생의 멘토로 삼았다. 격렬한 반미는 상당 부분 카스트로의 가르침이다. 무상의료·무상교육의 아이디어도 카스트로에게 배웠다. 차베스는 쿠바는 물론 볼리비아·니카라과·에콰도르 등 이웃 좌파국가에 석유를 싼값에 공급하고 거액의 경제원조를 하며 정권유지를 도왔다. 특히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쿠바는 사실상 차베스의 원조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반미가 가난을 구원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카스트로와 함께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도 차베스의 정신적 스승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인 그는 중남미를 두루 여행하며 가난과 차별, 그리고 사회적 모순을 목격한 뒤 혁명에 뛰어들었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도 중남미 전역에 혁명을 확산하려고 나섰다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사살됐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에 머물던 시절에 찍혔던 사진 등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혁명의 아이콘으로 사용되면서 영원한 젊은 혁명가의 이미지를 얻었다.



 차베스는 파나마 지도자였던 오마르 토리호스에게도 존경을 표시했다. 68~81년 집권하면서 내정에선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소련에는 반대해 미국의 지지를 얻었다. 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담판해 파나마 운하의 주권 회복을 약속받았다. 운하는 99년 12월 31일 자정 파나마 소유로 돌아왔다. 그 후광인지 아들 마르틴이 민주선거를 통해 2004~2008년 대통령을 지냈다. 차베스는 토리호스의 융통성까지 배우진 못했다.



 차베스가 세상을 떠난 뒤 차비스모의 미래는 어떨까. 이를 잘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1.59%포인트, 30만 표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리.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50) 후보가 지난 14일 대선에서 거둔 성적표다. 버스기사 출신으로 차베스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마두로는 선거 초반 우파 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에게 20%포인트 이상 앞섰으나 중산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가까스로 정권을 지켰다. 집권당 프리미엄에 차베스 추모 표를 포함하면 정치적 패배나 다름없다. 이는 차비스모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차비스모의 시대는 이제 저무는 것일까. 중남미 정치학 전공인 이순주 울산대 교수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빈곤층 증가 등 과거로의 회귀를 우려해 마두로를 지지한 것일 뿐 남미 다른 나라에서는 물론 베네수엘라에서도 차비스모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지만 남미의 전통을 고려할 때 차비스모가 이전보다 조금 더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게 변형돼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지난 14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니콜라스 마두로가 15일 지지자들을 향해 당선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카라카스 로이터]
 차비스모는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장기적인 국가발전 계획이나 국민 미래행복에 대한 고민이 없는 분배 중심의 정책은 오히려 국민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재검표 요구 등 국가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념이 먹히지 않는 시대의 이념 실험이랄 수 있는 차비스모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베네수엘라엔 훌륭한 모델이 있다. 이웃 브라질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포퓰리즘 정책 대신 산업 진흥과 기업 육성을 통해 국민 일자리를 늘려 빈곤층을 줄이는 중도좌파 노선을 추구했다. 그 결과 브라질은 브릭스로 불리는 신흥 경제강국 대열에 합류했다.



 베네수엘라도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인프라 개발과 산업 진흥에 박차를 가했다면 남미 경제강국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 차베스가 브라질 모델을 추구했더라면 87%의 기록적인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룰라처럼 세계적 지도자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지난해 차베스의 마지막 대선 지지율은 54%였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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