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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왜 지금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인가

중앙일보 2013.04.20 00:32 종합 24면 지면보기
원더박스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원더박스

528쪽, 2만원






20세기에 가장 히트한 광고 카피 중 하나는‘다이아몬드는 영원히!’가 아닐까. 1930년대 미 광고회사가 뽑은 그 카피는 보석 마케팅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반지는 변치 않는 사랑, 낭만적 사랑의 상징물로 즉각 떠올랐다. 우리시대 애정관, 결혼풍속까지 모두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그건 문제적 카피가 맞다.



 신간 『원더박스』에 따르면, 보석을 결혼예물로 하는 풍속은 19세기까지는 귀족사회 일부에만 국한됐다. 실은 낭만적 사랑이란 관념 자체가 우리시대 발명품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한 방에 훅 가는’ 불꽃 사랑을 부추겼고, 이후 빠른 속도로 연애결혼이 자리잡았다.



 로맨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 즉 가족과 친구는 채워 줄 수 없는 무엇을 ‘영혼의 반쪽’에서 구하는 게 정상일까. 그러면서도 “외롭다 외로워”를 반복하는 우리보다는 고대 그리스인이 현명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이타적 인간애(아가페), 성적 흥분(에로스), 우정(필리아), 부부의 정(프라그마) 등 사랑을 6개로 나눴다. 이 모든 게 사랑이다.



중세 사람들은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에서 줄타는 필립 프티. 사람들은 그의 곡예에서삶, 그리고 죽음의 팽팽한 긴장을 보았다. [사진 원더북스]
 『원더박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분류컨대 인문적 자기계발서인데 옛 역사에서 대안의 삶을 탐구한다. 서양풍속에 매혹적인 콜렉션을 담은 보석상자가 있듯이 역사의 원더박스를 열어 새로운 삶의 영감을 얻자는 제안이다.



 구체적으로 사랑, 가족에서 돈, 여행 그리고 죽음의 방식에 이르는 12가지 항목에 걸쳐 처방이 제시된다. 12개 항목 중 어느 꼭지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지만, 맨 뒤 ‘죽음 방식’이 눈길을 끈다. 의아하게도 중세 시절 파리, 로마의 공동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터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교회 납골당에서 사람 뼈를 장난감 삼아 놀았을 정도로 옛사람들에게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돌림병으로 인한 형제의 사망은 비일비재했고, 죽음은 불가항력이었다. 저들은 그걸 받아들였다. 역설적인 대목은 그 결과 중세인은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소중히 여겼다는 점이다.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이란 지혜의 말은 그래서 생겼다. 의료혜택과 긴 수명 덕분에 죽음을 잊고 사는 현대인은 외려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빠졌다. 결국 현재의 삶의 방식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게 이 책만의 매력이다.



 열려있는 삶을 위해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과도한 창의력 강조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창의력, 그건 말 자체는 좋지만, 요즘엔 기업, 관공서에서 아무나 그 말을 쓴다. 창의력 교육, 창의경영, 창의경제…. 광고회사에서는 임원을 아예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르는데, 옛 사람이 안다면 놀랄 일이다.



 르네상스 이전 창조행위란 엄연히 신의 천지창조 능력에 국한됐다. 그게 서서히 예술가의 자질을 지칭하다가 화가 미켈란젤로 이후 오늘날 ‘묻지마 천재숭배’로 이어졌다. 이런 상업주의의 붕붕대는 소음, 낡은 주문(呪文)에서 벗어나 어떻게 나만의 삶을 찾을까. 저자의 조언에 따르면, 스페셜리스트 즉 전문가 바보로 성장하기보다 제너럴리스트가 훨씬 균형 잡힌 삶이다.



 구체적으론 자녀 양육과 집안일에서 남녀 구분도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실은 가사일은 여자의 몫이고, 밖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남자 몫이라는 관념이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란 지적도 나온다. 사실 집안일(housework)이란 단어가 19세기에 등장했다. 남편을 뜻하는 영어 ‘husband’는 원래 집안에서 일을 하는 남자를 말했다.



 『원더박스』는 그런 열려있는 사람을 위한 롤 모델로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든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순간은 당신 삶을 위한 요긴한 작전타임이 될 수 있다. “이게 사는 것의 전부일까” 갑자기 그런 공허감이 들었다면, 언제라도 쥐고 읽을만하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문화사학자. 올해 초에 나온 『인생학교 일―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도 썼다.



 독자들이 걸러서 읽어야 할 대목은 저자의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이 종종 반문화(counter culture·저항문화)쪽으로 기울어지는 점이다. 그런 생각의 편차 때문에 긴장감이 유지되지만 말이다. 사족.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가 유행한 게 1910~40년대인데, 그때 두 남녀 주인공 사이 갈등이 다름 아닌 다이아몬드 반지 때문이었다. 당시 지구촌 유행코드에 굉장히 민감했다는 뜻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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