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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바이올린 40년 … "베토벤 연주 땐 장애도 잊어요"

중앙일보 2013.04.20 00:26 종합 8면 지면보기
18일 오후 4시.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선 수원시립교향악단(지휘 김대진)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2바이올린 파트, 뒤에서 두 번째 줄에 빨간색 넥타이를 맨 이강일(57)씨가 보였다.


오늘 장애인의 날 - 수원시향 '특별한 정년' 이강일씨

 바이올린 단원들이 연주하는 활 사이사이로 이씨가 올라앉은 휠체어가 비췄다. 이씨는 올해 연말 정년을 맞는다. 1990년에 수원시향에 입단했으니 23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셈이다. 연주 경쟁이 심한 교향악단에서 단원으로 정년을 채운 건 비장애인 음악가들에게서도 상당히 드물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만난 그의 첫마디는 “그동안 리허설에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게 가장 큰 자랑거리예요”였다.



18일 수원시립교향악단 리허설장에서 만난 이강일씨.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그에게 신체 장애는 음악 인생에 전혀 장애가 아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바이올린과의 만남=이씨는 56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우체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장남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여덟 달 무렵 소아마비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사지를 움직이지 못했대요. 병원도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두 팔은 움직였대요.”



 리허설이 끝난 오후 6시. 공연을 앞두고 저녁을 먹으러 들른 초계국숫집에서 이씨가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오른손은 하늘을 향했지만 왼쪽은 겨우 어깨에 닿았다. 딱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다. “처음에 첼로나 관악기를 접했다면 연주자의 꿈을 쉽게 포기해 버렸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바이올린을 만나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아들을 들쳐 업고 교실까지 날랐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받아 주는 중학교가 없었다. 그러다 대전 성세재활학교 중등부에 입학했다. 이씨는 “그때가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애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도 받고 경쟁도 하고요”라고 했다.



 바이올린을 만난 건 3학년 때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민재씨가 자원봉사를 나온 게 계기가 됐다. 바이올린은 당시 한 달 하숙비와 맞먹는 5000원 정도. 몇 주 후 들른 그의 방엔 새 바이올린이 놓여 있었다. “부모님이 어찌 아시고 사 주셨는데 지금까지도 그 내막을 모릅니다.”



 ◆4중주단 그리고 유학=악기를 함께 배운 친구들과 현악 4중주단을 꾸렸다. 차인홍(55·미 라이트주립대 교수), 신종호(56·아산재단), 이종현(54·전 청주시향 단원)씨가 그들이다. 연주가 즐거워 자취방을 얻어 합숙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4명이 살다 보니 집은 쓰레기장이었지만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다.



 4중주단의 소문은 서울까지 이어졌다. 우연히 얘기를 전해들은 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 황연대 전 관장이 이들을 만나러 대전에 내려왔다. 딱하게 보던 황 전 관장은 기숙사 제공을 약속했고 그 길로 상경했다.



 그러다 만난 신동옥 전 서울대 교수는 유학을 권했다. 특수학교는 학력으로 인정이 안 돼 최종학력이 ‘국졸’인 이씨에겐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제안이었다. 2년 넘게 주경야독을 했고 스물일곱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대학 입학자격을 따냈다. “신 교수님이 신시내티대를 권하셔서 오디션을 봤는데 저희 실력이 괜찮았는지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거예요. 장학금까지 받았어요.”



 미국에선 음악과 더불어 장애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동료들과 연주를 하면서 휠체어를 무대 한쪽에 뒀는데 ‘너한테 가장 중요한 건데 그걸 왜 옆에 두지 않느냐’고 해요. 머리가 띵했어요. 광고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닌 게 장애더라고요. 그 후론 무대에서도 휠체어에 앉아 연주를 합니다.”



 ◆수원시향=88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을 실업자로 보냈다. 이씨의 연주 실력을 전해들은 수원시향에서 함께해 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연습장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는데 면접관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갈 거고 내가 못하면 그때 나를 자르라고 했어요.”



 이씨는 공연장의 하드웨어를 바꿨다. 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됐고 건물을 신축할 땐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턱을 낮췄다.



 그는 “베토벤과 동료 단원들이 없었다면 정년을 채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청각장애가 있었던 베토벤에겐 다른 작곡가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가 있어요. 그 사람 음악을 연주하면 그게 느껴지거든요. 무대에 올라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23년간 휠체어를 밀어 주고 악기를 들어 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정년을 채우는 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 겁니다.”



수원=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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