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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멜로 한류에도 ‘창조경제’가 있다

중앙일보 2013.04.20 00:15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 형 규
베이징 총국장
요즘 중국 영화계를 울음바다로 만들고 있는 영화가 있다. 12일 개봉한 한·중 합작영화 펀서우허웨(分手合約)다. 이별계약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촬영했고 모두 중국 배우들이 출연했으니 분명 중국 영화다. 한데 이를 본 중국 관객들은 금방 김치냄새를 맡는다. 스토리가 진부한 한국 멜로 드라마라는 것이다. 한데 푸념은 하면서도 마음껏 울었다며 고마워한다. 너무 슬프고 감동적이라는 찬사도 아끼지 않는다. 한마디로 대박인데 숫자가 말해 준다. 개봉했는데 이틀 만에 제작비 3000만 위안(약 54억원)을 회수했다. 중국 멜로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다. 19일 현재 1억 위안을 벌어 중국 박스오피스 1위도 지키고 있다. 비결이 뭘까.



 첫째, 기획과 연출의 조화다. 감독은 ‘선물’ ‘작업의 정석’ 등으로 유명한 한국의 오기환씨가 맡았다. 일부 스태프 역시 한국인이다. 그래서 영화 배경은 ‘가을 동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스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대신 배우는 당대 중국의 최고 청춘 스타들을 골랐다. 한국의 감성을 중국 스타를 통해 연출해 중국인들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둘째, 한국과 중국 측이 반반씩 투자했다. 중국 측 투자비가 30% 이상이어야 하고 중국 배우를 써야 중국영화로 분류돼 대륙 상영에 제약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중국에선 매년 50편 이상의 외국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중 한국영화는 두 편에 불과해 사실상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은 불가능하다.



 셋째, 진부한 스토리지만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영화는 고교 시절 사랑했던 청춘 남녀가 5년 만에 재회했는데 암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이별을 통보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여자는 죽고 남자는 오열한다. 그 흔한 한류 멜로영화 공식 그대로다. 한데 제작진은 중국영화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기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해피엔딩을 새드엔딩으로 바꾼 게 주효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 후련함보다 애잔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온다. 일상이 우울할 때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도 많다. 진부함을 창조적으로 바라본 결과다.



 넷째, 눈물의 희소성에 주목했다. 중국인들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전사 얘기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문을 빛내고 효도하는 자식 얘기 외에는 별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에 익숙한 사회주의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제작진은 멜로영화로 중국인의 감성을 녹여보기로 했던 거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영화를 북한에 수출하면 어떨까. 철없는 김정은이 눈물이라도 좀 흘리면 인류의 생명을 겁박하는 저 광폭적 도발성이 조금이라도 순화되지 않을까 해서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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