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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역사 400년] 조선시대엔 '만병통치약' … 1976년부터 담뱃갑에 경고문

중앙일보 2013.04.20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담배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뒤 대중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을 보면 “이 풀(담배)은 병진(1616)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니 많지 않았는데, 신유(1621)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담배의 인기는 1668년 하멜표류기에 쓰인 “담배가 성행해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는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윤복 등의 풍속화에도 담배를 문 기생이 자주 등장한다. 정조 때는 사람들이 이익이 큰 담배 농사를 많이 지으려고 곡식을 심어야 할 밭에 담배를 심는 게 문제가 돼 금연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상소가 나올 정도였다.



 담배에 대한 인식도 지금과 달랐다. 조선시대엔 남쪽에서 온 신령스러운 풀이라고 해서 ‘남령초(南靈草)’로 불렸다. 이익의 ‘성호사설’엔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대접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담뱃대는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도 쓰였다. 양반들은 50㎝도 넘는 담뱃대를 들고 다녀 종이 불을 붙여주지 않으면 담배를 피울 수도 없을 정도였다.



 1876년 개항 이후 담배는 한 차례 큰 변화를 겪는다. 수입담배가 들어오면서 담뱃대 대신 종이로 마는 궐련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일본 담배가 이 시장을 장악했다. 그 때문에 담배는 일본의 경제 침투를 상징하는 상품이 됐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주요 활동 중 하나도 금연운동이었다.



 일제 강점기엔 담배가 국가만 생산을 담당하는 전매상품으로 지정됐다. 전매제도는 해방 후에도 계속 유지됐다. 담뱃값 인상은 세수를 늘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1947년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 재정을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전매 수입에 따른 세수가 전체의 75%에 달했다. 담배·소금 등에서 거둔 세금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셈이다.



  담배의 역사는 담배의 해로움이 점차 알려지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76년 담뱃갑에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가벼운’ 경고문이 도입된 이후 금연정책은 점차 강해졌다. 금연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보건사회부는 1980년을 ‘금연의 해’로 정하고 공격적인 금연 캠페인을 벌였다. 같은 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에 발맞춰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 저하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1995년엔 국민건강증진법이 만들어졌다. 담뱃값 일부로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기금을 조성했고 공공시설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기 시작했다. 병원과 학교 등에서 흡연이 금지된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남성 흡연율은 1987년 74.2%에서 2010년 40.8%로 떨어졌다. 지금의 담뱃값 논쟁은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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