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양념 없이도 혀에 착착 감긴다 … 몸통엔 '하얀 찹쌀밥' 가득

중앙일보 2013.04.12 04:00 Week& 8면 지면보기
금방 잡혀 올라온 주꾸미들이 온 힘을 다해 버르적거리고 있다. 둥근 몸통의 표면의 오돌도돌한 돌기까지 선명할 정도로 싱싱한 놈들이다. 아무리 활어 주꾸미라 할지라도 유통기간이 길어진 중국산에서는 이런 싱싱한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충남 서천 홍원항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자마자 “어,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3월 말. 봄은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건만 바닷바람은 예상 외로 차가웠다. “여긴 봄가을이 없슈. 그냥 여름 아니면 겨울이어요.” 주꾸미 잡이를 하는 어민 김진만(47)씨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배 타고 나가면 더 추워요. 내복 껴입어야 해요.” 이 말에 화들짝 놀라 다시 차를 읍내로 돌려 속옷 매장에서 막 창고로 들어가려 하는 두꺼운 겨울내복과 장갑을 샀다.

[이영미의 위대한 식재료] 충남 서천 주꾸미



주꾸미 배는 자정을 넘겨 새벽에 출항한다. 야행성인 주꾸미들은 밤이 돼야 활발하게 움직이며 그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시계를 보니 9시다. 그때까지도 다음날 새벽 배 뜨는 시각을 알 수 없었다. 밤새도록 바다의 상태를 보다가 새벽 1시에 나가기도 하고 3시에 나가기도 한단다. 미식가들이 환상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봄 주꾸미는 이렇게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어민들 덕분에 우리 입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서천 홍원항 "타지 주꾸미 출입금지"



쌩 하니 추운 봄 바다에서 주꾸미 그물을 당겼다. 올라온 그물에서는, 주꾸미뿐 아니라 꽃게, 가재, 곰치, 도다리 등도 함께 쏟아져 내린다.
낙지의 제철이 가을이라면, 주꾸미의 제철은 봄이다. 그것도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가 절정기다. 주꾸미들은 봄에 알을 낳는다. 조개류는 산란기에 독성을 품는 경우가 많지만, 생선들은 대개 산란기에 몸이 실해져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알배기 꽃게, 알배기 조기 등을 일부러 찾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니 바로 지금이, 질 좋은 알배기 주꾸미를 먹어볼 수 있는 계절인 것이다.



주꾸미 철이 되면 미식가들은 “봄에 밥알 한 숟갈 먹어줘야 하는데…” 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오징어·낙지·꼴뚜기·문어 등의 두족류(머리에 다리가 붙어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 중에서 몸통 가득 들어있는 알 맛을 즐길 수 있는 종류는 주꾸미밖에 없다. 살짝 데치거나 샤브샤브 국물에 익힌 주꾸미의 동그란 몸통 속에는 정말 찹쌀밥처럼 보이는 알이 한 숟가락 들어있다. 그 포근한 맛이란!



하지만 이런 ‘밥알 한 숟갈’ 주꾸미를 제대로 맛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대도시의 음식점에서 파는 주꾸미는 대개 중국산이나 베트남산이다. 특히 달고 맵게 양념해 볶거나 굽는 주꾸미 요리는 거의 수입산 냉동 주꾸미를 쓴다. 어차피 강한 양념 맛으로 먹는 것이니, 구태여 비싼 국산 생물 주꾸미를 쓸 이유가 없다. 국산 활어 주꾸미의 값은 베트남산 냉동 주꾸미 값의 3∼4배다. 냉동이라 해도 국산 가격은 베트남산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그나마 요즘은 어획량이 크게 줄어 질 좋은 제철 주꾸미들은 산지에서 다 동이 나고 대도시까지 올라올 게 없단다. 그러니 사람들은 봄날 나들이 삼아 서해안 포구로 몰려드는 것이다.



서천의 홍원항은 외국산은 물론이고 타지의 주꾸미도 반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 홍원항에서 주꾸미가 잡히지 않으면 온 동네가 장사를 못하지만, 그래도 그게 신뢰를 지키는 길이니 기꺼이 감수한다.



새벽 4시 반 김진만씨의 7.9t 어선이 출항했다. 주꾸미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그믐과 보름)에, 특히 파도가 높은 직후에 많이 잡힌다. 그렇지 않은 날은 배 끌고 나가봤자 그물에서 5마리 건지기도 힘들다고 했다.



암컷만 잡으려면 소라 껍데기 이용



보통사람들은 그냥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선장 김진만씨는 주꾸미 바구니를 들고 여유롭게 작업을 한다. 상품성 없는 자잘한 생선들은 다시 바다로 버리는데, 그것을 주워 먹으려 갈매기들이 떼 지어 어선을 쫓아다닌다.
주꾸미 잡는 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물로 잡아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라껍데기를 바다에 넣어 그 안에 산란하러 들어온 주꾸미를 잡는 것이다. 소라껍데기를 이용하면 갈고리로 주꾸미를 꺼내야 하기 때문에 육질에 상처를 입히지만, 산란하러 들어온 것들이기 때문에 100% 암컷만 잡을 수 있다. 대신 그물로 잡으면 암수 섞어 잡게 되지만, 대신 주꾸미가 깨끗하게 잡힌다. 김진만씨는 그물로 잡는다.



홍원항에서 출발한 배는 꽤 심하게 흔들렸다. 한 시간 넘게 달려간 곳에 김씨의 어장이 있다. 김씨는 13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바다에 나가면, 그 13곳의 어장을 모두 돌아보고, 그중 몇 개의 그물에서 주꾸미를 건져 올린다.



어느새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더니 빨간 해가 떠올랐다. 배는 계속 출렁거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선장 김씨는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중심을 잡으며 서 있었다. 김씨의 지휘에 따라 2명의 선원이 밧줄을 당겨 그물을 당겼다. 무언가 묵직하게 걸려 올라왔다. 그물이 쏟아놓은 것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놀랍도록 많은 양의 해양 쓰레기였다. 비닐봉지에 그물과 밧줄 찌꺼기가, 주꾸미 등 생선들과 뒤엉켜 있었다. 암컷 주꾸미는 산란을 하기 위해 비닐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선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그것들을 분류했다. 주꾸미·꽃게·도다리·박대·곰치·가재 등을 종류별로 나누어 담았다. 주꾸미는 씨알이 굵어 길이가 20㎝ 넘는 것들도 많았고, 아직 철이 조금 이른 꽃게는 자잘했다. 팔릴 만한 것들만 챙기고 너무 작은 꽃게들은 모두 바다에 도로 넣었다.



바다에서 막 올라온 주꾸미들은 정말 싱싱했다. 검은 회색빛의 놈들이 갑판 위를 열렬히 기어 다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지점은 중국산 주꾸미와 국산 주꾸미의 구별이었는데, 의외로 김씨의 대답은 싱거웠다.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흔히 다리에 금빛의 고리 모양이 선명하면 국산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산지와 무관하게 싱싱한 주꾸미에는 다 있단다. 또 중국산은 누르스름하고 국산은 진한 회색빛이라거나, 중국산은 몸통(흔히 머리라고 부르는)이 울퉁불퉁하고 국산은 매끈하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서해에서 잡은 중국산 주꾸미는 국산이나 중국산이나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국산에 비해 중국산은 유통에 걸린 시간이 길어진 상태이므로 신선도의 차이가 있는 정도란다.



이렇게 김씨가 1년에 잡는 주꾸미의 양은 2∼3t이다. 4월 하순이 되면 벌써 주꾸미는 점점 줄어들고 꽃게가 늘어난다. 그때부터 이 배는 꽃게잡이 배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주꾸미 철은 꼭 동백꽃 철이다. 서천에서 해마다 ‘동백꽃 주꾸미 축제’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홍원항 부근의 동백나무 숲은 주꾸미 철에 빨갛게 피어오르는데, 올해는 4월 12일까지 이 축제를 한다.



"내장까지 먹어보자, 1년에 딱한번"



싱싱한 제철 주꾸미에 무슨 양념이 필요하랴. 그저 살짝 데쳐낸 주꾸미는 아작거린다 싶을 정도로 식감이 좋으며 달착지근한 맛이 혀에 착 감긴다
새벽에 잡은 해물들은, 배가 귀항하자마자 수협에서 무게를 달아 일괄 수매한다. 아침부터 수족관 트럭을 대놓고 배 들어오기만 기다리던 도매상과 음식점 주인들은, 물건 오기가 무섭게 주꾸미를 사갔다. 도매상들이 쓸고 지나가자, 이제는 관광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울긋불긋 옷을 입은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버스에서 내려 쇼핑을 시작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 채워 온 주꾸미는 집에 와서도 한참이나 살아 꿈틀거렸다. 멸치·조개·무 등을 약간 썰어 넣고 국물을 준비하는 동안 주꾸미를 씻었다. 밀가루를 이용해도 되지만, 나는 그냥 손으로 여러 번 훑으며 씻는다. 거죽의 미끈거리는 것들과 빨판 속 개흙까지 깨끗이 씻으며 나는 내장과 먹물을 제거할까 말까 약간 망설였다. 당일 잡은 것이니 신선도로 보자면 내장과 먹물까지 다 먹어도 되지만, 중금속 성분이 주로 내장에 모인다는 생각에 멈칫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싱싱한 주꾸미야 일 년에 딱 한 번이다 싶어 이번에는 먹기로 했다. 마늘과 조선간장을 넣어 국물을 완성한 후 냉이·미나리·버섯·파 등의 야채를 준비해 주꾸미와 함께 상에 올렸다. 팔팔 끓는 국물에 살짝 넣었다 꺼낸 주꾸미 맛은 기가 막혔다. 아작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하게 쫄깃했고 아무 양념을 하지 않아도 혀에 착 감겼다. 조금 더 익힌 몸통은 가위로 잘라, 알과 내장까지 함께 먹었다. 다리의 아작한 식감과는 또 다른,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먹을 수 있을까. 연안의 어획량은 줄어가고 해양 쓰레기는 늘어간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면서도, 그래도 봄날 저녁 주꾸미 한 접시에 마냥 행복했다.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ymlee0216@hanmail.net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