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황 직격탄 … 중장비·밥집·보습학원 수난시대

중앙일보 2013.04.12 01:46 종합 2면 지면보기
충북 충주의 굴착기(포클레인) 사업자 강준구(45·가명)씨는 지난해 말 은행 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2008년 시작된 4대 강 정비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아 5대였던 포클레인을 10대로 늘린 게 화근이었다. 출혈경쟁으로 헐값에 하도급 계약을 한 탓에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대 강 사업이 끝나자 일거리가 뚝 끊겼다. 강씨는 포클레인을 모두 처분해 빚을 갚아보려 했지만 이미 산더미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신보 대출 돈 떼인 비율 가장 높아
4대 강 이후 건설사업 확 줄어
식자재값 오르고 대형식당 급증
학원 대신 값싼 온라인 강의 몰려

 경기도 안산의 유모(39)씨는 은행 대출금으로 근근이 운영하던 백반집을 올해 초 그만뒀다. 밀가루와 채소값이 크게 올라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 데다 바로 옆에 유명 한식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며 손님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초·중생 보습학원을 운영하던 성모(40)씨도 임대료를 내기 위해 빌렸던 은행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얼마 전 학원 문을 닫았다. 몇 년 전만 해도 50명이 넘던 원생 수는 절반도 안 되는 2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성씨는 “학부모들이 팍팍한 살림에 아이들 학원비가 부담된다며 그만두게 하는데 손쓸 방법이 없더라”며 울상을 지었다.





 경기침체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자영업은 건설 중장비와 동네 밥집·보습학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문을 닫은 비율이 어느 업종보다 높았다. 신용보증기금이 지난해 보증을 해줬다 돈을 떼인 비율(부실률)을 업종별로 분석한 결과다. 보증대출을 못 갚는 자영업자는 보통 몇 달 안에 폐업 절차를 밟는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113개 업종의 평균 부실률은 4.8%로 2011년과 비슷했다. 그러나 포클레인·덤프트럭·불도저로 하청공사를 하는 중장비업의 부실률은 22.6%로 평균의 4배에 달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건설 생태계 붕괴’가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건설업은 ‘4대 강 정비사업’과 같은 대규모 공공건설 사업과 주택건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0대 건설사 중 20곳 이상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다. 이들의 하청, 재하청 업체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건설 생태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중장비업자들의 피해가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모두가 어렵다 보니 요즘엔 일부러 돈을 안 주려고 ‘고의부도’를 내는 하청업체까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건설업 불황은 철근 콘크리트 사업(9.8%)과 사무용 가구 도매업(9.2%)의 부실률에도 큰 영향을 줬다.



 동네 밥집으로 대표되는 한식업의 부실률(11.8%)도 전체의 두 배를 넘어섰다. 세계적인 이상기후와 대형 업체들의 골목상권 진출로 협공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브라질·러시아 등 주요 곡물 생산국의 가뭄으로 수입 식자재값은 높게는 20%까지 폭등했다. 곽성철 신보 조사연구부장은 “대형 한식당보다는 동네에 있는 밥집들이 주로 폐업했다”며 “서민을 상대로 장사하다 보니 원재료값이 올라도 음식값을 못 올린 탓”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인지도와 적당한 가격을 내세운 유명 브랜드의 한식 음식점들도 지난해 동네 밥집이 단골 손님을 빼앗기는 데 일조했다.



 동네 보습학원(부실률 11.4%)도 식당과 비슷하게 문을 닫았다. 저출산과 가계 살림살이 악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들의 사업 확장이 영향을 줬다. 지갑이 얇아진 서민들이 자녀 사교육비를 줄이고 방과 후 학습과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동네 보습학원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불황에 잘 버티는 업종도 있었다. 자동차정비업(1.7%)과 자동차부품제조업(1.9%)은 부실률이 전 업종에서 최저였다. 새 차를 사는 것보다 타던 차를 고쳐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화장품 도매업(4.5%)과 신발 소매업(4.5%)도 평균보다 잘 버텼다. 여성들이 값싼 립스틱으로 소비욕구를 충족하는 ‘립스틱 효과’ 등이 작용했다고 풀이된다.



 신보는 부실률이 높은 업종에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입장벽이 낮은 현금 장사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곽성철 조사연구부장은 “이들 업종은 창업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게 어렵지 않고 큰 자본 없이 본인이나 가족의 노동력만 투입하면 되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대신 경쟁이 금방 치열해지고 경기변동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 등 외부 변수로 수익성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업종을 피하고 정부에서도 특정 업종에 창업자들이 몰리지 않도록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주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보증대출 부실률=중소기업·자영업자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 이자를 석 달 이상 연체하거나 원금을 한 달 이상 연체한 대출금의 비율. 신보 보증대출을 못 갚으면 거의 대부분 문을 닫게 된다. 신보는 주로 대출 여력이 부족한 업체나 자영업자들이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해주는 공공기관이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