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관료 불패 사회

중앙일보 2013.04.12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부문 차장
A라는 기업이 있다. 직원들이 하반기에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워 최고경영자(CEO)와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들어올 돈을 너무 많이 책정했다. 고의인지 과실인지 불분명하다. 해가 바뀌자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A사는 은행 빚을 내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끌어와야 할 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럴 수 있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한 대기업 임원은 “최악의 경우 CEO가 임원을 교체하거나 직원을 권고사직시킬 수 있는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A사를 대한민국 정부로 바꾸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이 된다. 박근혜정부는 최근 이명박(MB)정부 때 세입을 너무 과도하게 잡았다면서 추가경정예산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예산을 짤 때는 올해 우리 경제가 4% 성장할 것으로 보고 그에 걸맞은 세수를 예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성장률이 그에 한참 못 미칠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 전망은 틀리라고 있는 것”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맞히기 어렵다. 정부의 세입 추계가 틀린 게 처음도 아니다. 경기가 나빠 세금이 안 걷힌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는 관료들의 자세와 의도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석 달 뒤 정부는 성장 전망치를 3%로 낮췄다. 애초의 성장 전망이 안이했던 것일까, 균형재정을 달성하려고 세입 전망을 무리하게 꿰맞춘 것일까. 어느 경우든 기업 같았으면 CEO와 주주에 대한 중대한 기망으로 중징계 대상이다.



 정부가 산업은행 주식 매각 대금으로 2조6000억원을 책정해 놓았던 것도 그렇다. 산은 주식을 팔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한데 국회 반대에 부닥쳤다. 관련 안건은 지난해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된 후 보류됐다. 그 후 관료들이 국회 동의를 받기 위해 절실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관료들은 팔지도 않을 주식의 매각 대금을 세입으로 잡아놓은 것일까.



 새 정부 경제팀은 지난달 말 갑자기 산은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은 민영화는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투자은행(IB) 하나쯤 있어야 한다”며 MB정부 5년 내내 요란을 떨었던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작 산은 민영화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왜 산은을 팔지 않기로 했는지 별다른 설명이 없다. 달라진 것은 정권이 바뀐 것뿐이다. 관료들은 철학이 없는 것일까, 소신이 없는 것일까.



 예산 부실 편성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모자라는 세입만 12조원이라고 한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충당할 계획이다. 국채는 결국 나라빚이다. 관료들은 나라살림을 부실하게 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반성도 사과도 없다. 지난해 예산 편성을 주도한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자 일제히 장관으로, 차관으로, 외청장으로 영전했다.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은 당시 정부의 자문기관이었던 국책연구원장 출신이다.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어떤 영화를 누리는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과연 대한민국은 관료 불패다.



이상렬 경제부문 차장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