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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로 흐른다

중앙일보 2013.04.12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 이 상식을 바탕으로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과거를 탐구하면 미래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흐른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그 유용성은 어떨까. 바람직한 미래를 그려놓고 이에 지금의 머리와 발을 맞춘다면 상식을 뒤집은 대가를 호되게 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40여 년 전 이런 생각을 한 그룹이 있었다.



 국회도서관 5층의 옛날 서고. ‘사상계’ 16권 9호(1968년)에서 짧은 논문을 찾아냈다. 제목은 ‘미래의 기습(奇襲)과 그것의 정복’. 기고자는 고(故) 이한빈 전 부총리로, 미국 학계가 인정하는 한국 미래학자 1호다. 미래탐사의 필요성을 이렇게 적는다.



 “현재를 낳는 것은 과거보다도 오히려 미래라는 생각이다…미래를 외면해온 역사의 귀결은 반복되는 미래로부터의 기습이었다. 개화기에 우리 조상들의 행적을 보라.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 미래의 기습을 당한 그 참상의 대가를 오늘날까지 치러오지 않았던가….”



 그는 ‘내일의 얘기를 하면 귀신도 웃는다’는 속담을 언급하며, 선진국과 달리 미래연구가 외면받는 이유를 설명한다. “바깥에서 오는 재앙과 안에서 생기는 우환이 겹쳐서 오늘의 삶에 시달린 나머지 생겨난 생활태도일는지 모른다. …이런 태도가 조금씩 달라질 듯한 조짐이 보인다.”



 당시 그는 경제개발계획·대학발전계획의 수립을 보며 미래학의 미래를 꿈꾼다. 몇몇 언론인·학자와 함께 생각을 다듬고 한국미래학회를 창설한다. 하지만 그 후 미래연구는 제자리를 맴돈다. 변변한 후대 미래학자도 나오지 않는다. 바람에 앞서 움직이는 갈대를 희망했지만 황량한 들판의 작은 목소리가 됐다.



 “미래라면 30년은 봐야 한다.” 방한 중인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의 견해다. 바람직한 미래상을 설정하고 그렇게 변화시키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20년, 30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세운다. 우리 정부의 중기계획 단위는 아직도 4, 5년이다. 그 이상의 긴 계획은 파쇄기로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세상에 사는 심해어(深海魚)는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한다. 불안·초조가 깔린 사회에 사는 사람도 미래를 짧게 본다. 한국인은 미래를 몇 년으로 볼까. 평균 13년 후를 미래로 여긴다는 조사 결과가 어제 나왔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 프로그램이 중앙일보사 MMR에 의뢰해 나온 결과다. 직업·학력·연령별 차이가 컸다. 화이트칼라·대졸·30대는 15년, 블루칼라·노장년층·고졸 이하는 10년 뒤를 미래라고 여긴다. 앞날이 불안하고 현실이 벅찬 사람일수록 ‘심해어 현상’을 보인 것이다.



 요즘 미래연구가 모처럼 고개를 든다. 미래창조과학부 출범이 직접적인 동력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잽싸게 베끼는 경제, 가치지향이 약한 속도전 사회,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에 매몰되는 개인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뿌리 깊은 동력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 부처 중 가장 멀리 봐야 하는 미래창조과학부에 묻고 싶다. 미래시계를 몇 시에 맞추었나. 15년, 20년, 30년…. 최소한 5년이 아니길 바란다. 오랜만에 달아오른 미래연구의 분위기를 끌어가며 존재의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단기목표에 집착한다면 대통령의 임기와 같이 갈 것이다.



 혹시 “시계를 20년, 30년에 맞추면 내 때 결과가 안 나올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책임교수는 “장기계획을 세우더라도 1년, 5년, 10년 단위로 실천목표를 설정하면 그때그때 성과관리가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국가나 조직뿐이겠나. 가정·개인도 발등의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하면 미래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게 된다. 40여 년 전 미완으로 끝난 ‘미래의 기습’ 그룹의 생각은 여전히 울림이 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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