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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벚꽃(사쿠라) 이야기

중앙일보 2013.04.11 16:17
팝콘처럼 피는 봄의 전령사



요지음 한국의 날씨는 봄이 왔지만 봄답지 않다(春來不似春)고 할 정도로 바람이 세차고 차가운 공기로 겨울이 다시 돌아 온 듯하다. 4월이지만 “봄 대신 눈”이라면서 TV는 봄의 전령사 벚꽃위에 수북히 싸인 눈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폐쇄도 불사하는 전쟁위협에 한반도가 한기(寒氣)를 느끼는 것이 날씨와 닮았다.



그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개나리 진달래 산유수 목련 등 봄의 꽃은 남북한의 긴장과 아랑곳없이 피어나고 있다. 그중 사람의 혼을 쑥 빼 놓을 만큼 담홍색으로 무리지어 피어나는 꽃이 벚꽃이다. 어제까지만 꽃 봉오리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벌써 피어 있어 벚꽃은 “팝콘처럼 핀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일년초나 다년초에서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긴 하지만 뭔가 연약하여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수령이 수 백년 이나 되는 키 높고 아름드리 벚나무에서 피는 벚꽃은 매년 볼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다. 크게 자란 나무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가지에 꽃송이도 그 만큼 많다. 벚나무가 무리지어 꽃을 피우면 그 근처가 꽃으로 인해 밤에도 밝게 느껴지고 낮에는 마치 안개라도 끼어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북서풍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어 내야하는 동아시아 야산에서 보통 나무들은 새잎을 내고 꽃을 천천히 보여주는데 벚나무는성질 급한 사람처럼 잎보다 화려한 꽃을 먼저 내보인다. 제주도 및 한반도의 서남쪽이 원산지인 벚나무는 그 꽃의 화려함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유교의 영향으로 질박을 미덕으로 삼는 조선 선비들이 벚꽃의 화려함을 우정 멀리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벚나무는 목재의 우수성으로 국보 팔만대장경이 판각된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벚나무의 껍질을 달여 먹으면 감기가 낫는다는 등 벚나무와 열매인 버찌도 진해거담(鎭咳去痰)의 약재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매화(梅花)와 벚꽃



그러나 봄꽃 중에 매화는 달랐다. 충효를 으뜸으로 치는 유교정신은 겨우 내내 찬바람이며 심지어 눈을 둘러쓰고도 피는 한 송이 순백의 매화를 충성스러운 선비의 모습으로 찬양했다. 중국과 한반도에서 전해진 매화는 일본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일본이 전쟁이 없던 헤이안(平安)시대(794-1192)까지만 해도 꽃이라면 매화를 생각하고 매화의 고절을 읊는 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금도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에는 매화 밭이 많아 매실주(우메슈)며 매실가공 식품(우메보시)도 생산하고 있다.



중국과 한반도에 전란이 일어나자 일본은 대륙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국풍(國風)이라는 일본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킨다. 일본에서는 대륙적인 매화보다 피어나는 꽃이 화려한 “사쿠라”(벚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근세 에도(江戶)시대에는 오래 동안 평화에 젖고 상업의 발전으로 화려한 채색의 우끼요에(浮世畵)가 유행하자 사쿠라의 인기는 폭발하게 된다. 지금도 사쿠라 하면 일본인을 연상하고 사쿠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일본에 가야할 정도다.



하나미(花見) 전선



꽃을 즐기는 꽃놀이를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상화(賞花)” 또는 “심화(尋花)“라고 표현 하지만 일본인들은 꽃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하나미(花見)”라고 불렀다. 지금도 하나미가 일본에서는 봄철의 빠질 수 없는 풍속도가 되었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 다란 국토의 성격상 사쿠라 개화기가 다르다. 사쿠라가 동시에 “확" 피었다가 금 새 "휙” 져버리는 특성상 하나미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쿠라 개화기 예보가 매우 중요하다.



일기예보처럼 “사쿠라 전선(前線)”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하나미전선”이다. 기상예보관이 일기예보는 틀려도 용서되지만 “사쿠라전선”의 예보가 틀리면 옷을 벗어야할 정도로 민감하다. 일본의 동전(銅錢)에도 사쿠라가 들어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지 사쿠라를 옆에 두고 싶은 일본인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무라이와 사쿠라



사쿠라의 개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 봄바람에 날리면서 우수수 꽃잎이 떨어진다.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꽃잎으로 대지가 뒤 덥혀 있다. 관찰력이 좋은 일본인들은 사쿠라가 피고 지는 모습은 사무라이(武士)가 배워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하였다. 옛날 중국과 한반도에서 매화가 찬 눈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선비정신을 배우듯이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화려한 사쿠라의 꽃잎이 대지위에 휘날리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생명을 초개처럼 버릴 줄 아는 무사도(武士道)가 그 속에 있음을 알았다.



메이지(明治)유신(1868)이후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건 일본은 전 국민을 무사화(武士化)하여 전장에 나가면 사쿠라 꽃잎처럼 떨어지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많은 군가(軍歌)에 사쿠라가 들어 있고 전사(戰死)통지는 “사쿠라가 지다(落花)”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러한 전통이 남아 있어서인지 자위대 장교의 계급장이 사쿠라로 표시되고 자위대 깃발에도 사쿠라가 들어 있다.



심지어 학교도 사쿠라가 피는 4월에 신학기를 시작하였다. 일본은 근대식 학교제도를 유럽에서 도입하여 처음에는 가을학기로 시작하였지만 1930년대 사쿠라 정신을 좋아하는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사쿠라가 피는 봄에 신학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 학기를 조기 졸업 시켜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몰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러한 유풍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일본은 봄 학기로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봄 학기 제도도 일본의 영향으로 보인다. 어느 연구자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단 두 나라 한국과 일본만이 새 학년을 봄 학기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쿄대학을 중심으로 세계의 스탠다드 ‘글로발’을 앞세워 가을학기로 되 돌리고저 한다지만 4월에 피는 사쿠라가 9월에 피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진해 군항제와 창경원의 “나체팅”



한국에는 일본 강점의 잔재로 오래된 벚꽃명소가 많다. 매년 4월초가 되면 진해의 해군 사령부내 벚꽃축제 군항제가 유명하다.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의 연합함대는 러시아와 해전에 대비 마산만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대한제국에 압력을 넣어 옛 합포 지금의 창원시 합포구 건너편 진해에 군항을 만들어 연합함대의 주력을 주둔시켰다. 그리고 제주도 우도등 러시아 해군이 지나 다닐 길목에는 러시아 해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감시 포스트도 마련하였다. 사쿠라는 일본의 군인정신을 일깨워주는 정훈목(政訓木)으로 일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반드시 사쿠라를 심었다. 진해 군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이 진해에 이어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은 곳은 서울의 창경궁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거처를 창경궁으로 옮기게 하고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은 일본은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연못을 파서 수천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그 후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도록 이름도 창경원으로 고쳤다. 벚나무들이 조금 자랐을 때 밤에는 전등을 매달아 대 낯처럼 밝히고 야간 개장도 하였다.



1945년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물러간 이후에도 오랫동안 창경원은 동물원 식물원과 함께 벚꽃의 명소로 국민공원이 되었다. 1990년대에 와서 창경원이 궁으로 복원되고 원내의 동식물들은 과천으로 벚나무는 여의도로 옮아갔다. 오늘 날 서울의 벚꽃 명소가 된 여의도의 윤중제 벚나무는 본래 창경원의 벚나무였다. 과거 창경원의 “나체팅”(나이트 체리블로섬 미팅)이라는 밤 벚꽃 미팅도 여의도로 옮겨 갔다.



일본이 벚나무를 일본군이 주둔하는 침략지에 강제로 심어 벚나무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다보니 벚나무의 운명은 일본의 흥망과 같이 하게 되었다. 일본이 패망하여 물러갈 때 일본이 심은 벚나무는 모두 베어야 한다고 흥분할 때 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와 한반도 서남쪽임이 밝혀져 진해와 창경원의 벚나무가 톱과 도끼의 날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쿠라처럼 피었다가 사라진 일본의 군국주의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나보는 벚꽃은 대부분 일본 사쿠라의 대명사인 “소메이 요시노(染井吉野)“이다. “소메이 요시노”의 선조가 제주도의 왕벚나무라는 것은 일찍이(1908) 독일의 식물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그 후 1930년대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것이 식물학자 고이즈미(小泉源一)에 의해 다시 확인되었다.



“소메이(染井)”는 에도(지금 도쿄)의 북서쪽의 지명이고 “요시노(吉野)”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이 많이 살던 일본 중부의 산악지대인 나라현(奈良縣)의 지명이다. 요시노의 산에서 가지고 온 새끼 벚나무가 당시 에도(江戶)의 원예촌이던 “소메이” 수목원에서 배양되어 전국에 보급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일본의 군부는 동아시아를 석권하면서 일본 파워의 상징으로 아시아 각국에 소메이 요시노를 강제로 심게 하였다. 1945년 종전이 되면서 일본 군부의 지도자들은 전범으로 체포되어 스가모(巢鴨)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가모 감옥은 옛 소메이 요시노의 수목원이 있었던 곳이다. 일본침략의 상징 소메이 요시노는 동아시아 곳곳에서 자라고 있지만 침략자 군부의 지도자들은 소메이 요시노를 키운 곳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스가모 감옥은 철거되고 60층 높이의 산사인 빌딩이 들어 서 있다.



워싱톤의 제주도 벚꽃



1910년대 일본은 미국의 워싱톤의 포토맥 강과 연결되는 조수(潮水)조절 인공호(tidal basin) 호반에 3000그루의 왕벚나무를 심었다. 워싱톤은 본래 미국 남부 버지니아 주의 버려진 습지로 말라리아가 극성스러운 곳이었는데 남북의 화합을 위해 이곳에 연방정부의 수도가 된 계획도시다. 미일(美日)의 우호를 상징하는 일본의 소프트 외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 온 첫 번째 벚나무는 병충해로 모두 죽어 불태워지고 두 번째 건너 온 벚나무가 잘 자라 세계적인 벚꽃명소가 되었다. 이제 벚꽃단지가 된지 100여년이 되어 노목이 많다.



일본이 워싱톤의 벚나무를 “소메이 요시노”로 소개해 놓아 당시 나라를 잃은 재미 한국인들이 울분을 토하였다고 한다.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은 미국인에게 워싱톤의 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지임을 알리기 위해 1943년 제주도의 왕벚나무 수 그루를 워싱톤의 모 대학에 심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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