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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시로 뜬 홍콩 … 비결은 재정지원 + 능력주의

중앙일보 2013.04.11 05:00 종합 10면 지면보기
9일 오후 홍콩과학기술대 재학생(왼쪽 둘째)이 학교를 방문한 프랑스국제학교 교사·학생들에게 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홍콩=이한길 기자]


지난 8일 홍콩대 글로벌라운지에서 만난 이 대학 신입생 허이판(19·여·사회과학대)은 중국 본토 후난(湖南)성 출신이다. 지난해 중국 대입시험에서 성(省) 전체 문과 수석을 차지한 수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각 성 수석들은 베이징대·칭화대 등 중국 본토 대학에 지원하는 게 관례였다. 허이판은 왜 홍콩대를 선택했을까.

전체 8곳 중 6곳이 50위 내
정부가 대학 예산 절반 이상 부담
교수 채용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
국제화 수준 높아 80개국서 유학



 “본토의 대학들보다 수준이 훨씬 높으니까요.” 홍콩대는 THE가 발표한 ‘아시아 100대 대학’ 중 3위를 차지했다. 4위인 베이징대, 6위인 칭화대를 앞섰다. 홍콩대가 지난해 중국 본토 학생 300명을 선발했는데 지원자가 1만 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9위를 차지한 홍콩과기대에도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 인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라이언 코(23·말레이시아)는 2010년 말레이시아 대입시험에서 전국 8위 안에 들었다.



 “홍콩에선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고 취업문도 넓어요.” 올여름 졸업을 앞둔 라이언 코는 호주 건설업체의 홍콩지점에 취직이 결정된 상태다.



 아시아의 쇼핑·금융·물류 중심지로 유명한 홍콩은 세계적인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홍콩에 대학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인구 700만 명의 홍콩에는 종합대학이 8개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중 6개 대학이 이번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50위권에 들었다. 홍콩대(3위)·홍콩과기대(9위)·홍콩중문대(12위) 등 ‘홍콩의 빅3 대학’과 홍콩시티대(19위)·홍콩이공대(33위)·홍콩침례대(50위)다.



 홍콩 대학들의 강점은 높은 국제화 수준이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자기소개서와 성적·인터뷰 등을 보는 입시에선 미국의 SAT, 영국의 A level, 한국의 수능성적 등 각국의 성적을 인정해 준다. 이런 국제화 덕에 홍콩대엔 80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교수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홍콩대 전임교수 중 55.8%가 비(非)홍콩 출신이다. 존 스핑스 홍콩대 부총장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교수들이 함께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연구과제나 아이디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홍콩의 대학엔 유럽과 미국 대학의 장점이 섞여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은 유럽을 닮았다. 홍콩 정부는 대학 예산의 절반 이상을 부담한다. 덕분에 대학 등록금이 1년에 600만~700만원(홍콩 학생 기준)으로 저렴하다. 능력 중심의 교수 채용은 미국을 벤치마킹했다. 토니 챈 홍콩과기대 총장은 “홍콩 대학들은 연줄을 중시하는 중국식 ‘관시’(關系)를 없애고 철저히 실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우수한 교수를 뽑고 있다”고 강조했다.



 총장도 예외가 아니다. 추이랍치 홍콩대 총장은 경쟁 대학인 홍콩중문대 출신이다. 거꾸로 조셉 성 홍콩중문대 총장은 홍콩대를 나왔다. 모교 출신 총장 일색인 한국 명문대에선 찾아보긴 힘든 사례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당시만 해도 홍콩 대학들의 약진을 예상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홍콩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중국 본토의 우수 학생을 데려오고 중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 학생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많은 외국인 학생이 중국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직 중국은 폐쇄적이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죠. 이들에게 홍콩은 중국 진출을 위한 최적의 장소입니다.”(고든 쳉 홍콩중문대 부총장)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베이징대·칭화대 등 중국 대학들이 약진하면 홍콩 대학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도 나온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우려도 크다. 지난해 9월 중국식 애국교육인 ‘국민교육’ 도입이 추진되자 이에 반대하는 대학생 8000여 명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학평가팀=천인성(팀장)·성시윤·윤석만 기자, 홍콩=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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