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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동안 샅샅이 뒤지는 '융단폭격 세무조사'

중앙일보 2013.04.11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꽃샘추위가 한창인 요즘, 기업엔 세무조사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국세청이 세수 확보를 위해 매출액 500억원이 넘는 기업의 조사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20곳 이미 조사 중
"부자세 걷나" "기업 경영심리 크게 위축"
매출전표 누락한 영세업체도 조사 공문

초강도 세무조사에 기업들은 “조사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며 울상이다. 세무조사가 광범위해지고 치밀해진 탓이다. 기업 쪽에선 ‘융단폭격식 세무조사’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기업도 언제 세무조사 통지서가 날아들지 몰라 몸조심하기에 바쁘다.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들의 불안감과 세무조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국세청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지난 2월부터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GM은 연일 초비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기 세무조사임에도 관할인 중부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국세청에서 착수한 것도 신경 쓰이는데 조사기간이 6개월이나 된다는 통보를 받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영업 적자를 기록한 이 회사의 본사는 인천시 부평구에 있다. 국세청은 한국GM에서 생산된 엔진 등 주요 품목이 미국 본사 및 해외 공장 등에 넘겨지면서 문제 될 만한 거래가 없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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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GM은 조사 기간이 3개월 정도였던 2008년 세무조사 때도 300억여원을 추징당한 바 있다. 긴장하는 것은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현재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진 기업만 롯데호텔을 비롯해 GS칼텍스·KT&G·인천국제공항공사·NHN·미래에셋 등 20여 개사에 달한다.



 대기업은 물론 금융·공기업·정보기술(IT)·외국계 등 거의 모든 업종이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중 몇몇 기업은 통상 4∼5년쯤이면 대상이 되는 정기조사가 아닌 특별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쯤 되면 ‘무차별 융단폭격식 세무조사’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해당 기업들은 통상 2∼3개월 정도면 끝나는 정기 세무조사가 올해엔 최소 6개월 이상으로 늘어난 점을 적잖게 부담스러워한다. 한국GM과 GS칼텍스·LG디스플레이 등이 6∼9개월 조사를 통보 받은 상태다.



 익명을 원한 A대기업 관계자는 “회사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세무조사가 반년 이상 계속되면 당연히 임직원들은 움츠러들고 경영도 어려워진다”며 “특히 ‘뭔가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바깥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조사기간이 길어진 것은 물론 세무당국이 요구하는 자료가 전례 없이 방대하고 압박도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B기업 대표는 “일부 직원과 골프를 친 비용을 복리후생비로 처리했는데 이번엔 ‘모든 임직원에게 해당하는 복지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며 추징금을 매겼다”며 “예전 같으면 지적만 하고 넘어갔을 사안인데 조사가 많이 깐깐해졌다”고 말했다. C대기업 관계자는 “세수 확대를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혹시 대기업에 ‘부자세’를 걷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도 해당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D대기업 관계자는 “상장회사라 모든 업무를 정상적으로 공시했고 증여세도 납부했는데 세무조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 의혹까지 받게 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 특혜설 시비에 휘말렸던 E대기업의 세무조사도 도마에 올랐다. 회사 관계자는 “요구하는 자료가 정기조사 수준 이상”이라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전례 없는 대규모 세무조사 탓에 조사 대상이 아닌 기업들도 덩달아 얼어붙었다.



 F대기업 임원은 “언제 우리한테 불똥이 튈지 몰라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다”며 “다른 대기업도 각별히 몸조심에 들어간 상태”라고 전했다. 검찰 압수수색, 특별 세무조사 등을 경험했던 일부 대기업은 ‘비상 대응 매뉴얼’을 갖춰놓고 있다.



 규모가 작은 영세중소기업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국세청은 “연 매출 500억원 이하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틀니 같은 보철물을 만들어 치과에 납품하는 치기공 사업자 G씨는 지난주 관할 세무서로부터 “수입 누락 혐의로 조사를 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영업 악화로 지난해 1억원가량 수입(매출)이 줄었는데 세무서 측에서 ‘믿지 못하겠다’며 조사를 하겠다는 것. “조사를 피하려면 3000만원가량 수입을 올려서 수정 신고하라”는 세무 공무원의 조언이 있었으나 그에겐 난감한 주문이다. G씨는 “‘수퍼 갑’인 치과에서 매입전표 발행을 거부하고 있어 창업 10년 만에 처음 세무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라며 “이렇게 영세업체에도 날벼락이 떨어질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특히 거래 상대방(치과)까지 추가 조사하면 사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익명을 원한 경력 15년차 세무사는 “이들에게 추징할 세금은 많지 않은데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일부에선 이런 방식의 고강도 세무조사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CHA차의과학대학 김태동(회계학) 교수는 “탈세 등 불법 행위를 단죄하고 세수를 확보하는 효과에 비해 기업들의 경영 심리를 위축시키고 예측 가능성을 악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태희·이상재 기자



◆세무조사=국세청 용어에는 정기 세무조사밖에 없다. 수시로 하는 특별 세무조사나 심층 세무조사란 표현은 없다. 보통 국세청은 5년마다 정기조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력 수급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 세무조사 기간이 3~7년으로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세무조사 기간은 3개월로 한정된다. 그러나 기간을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국세기본법에는 세금계산서에 대한 추적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세무조사의 강력한 도구는 ‘예치조사’다. 예치조사란 기업이 보유하는 납세 관련 서류를 국세청이 가져가 보관하면서 조사하는 방식이다. 형사소송법상의 압수·수색영장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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