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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창조경제, 로드맵 없이 가야

중앙일보 2013.04.11 00:51 종합 33면 지면보기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근래에 ‘창조경제’가 화제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정책기조로 삼으면서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용어 자체가 손에 잡히는 개념이 아니어서 막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왕 창조경제라 했으니 그 개념을 성급히 정의하기보다는 깊은 고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창조경제라는 화두에 걸맞은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창조경제는 이제껏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서야만 구현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부터 생각해보자. 우선 창조경제에 대한 정의를 서둘러선 곤란하다. 일단 정의가 내려지면 그 틀에 맞추어 계획을 수립하고 정책적 노력이 집중될 것이며 그 틀 속에서 성과를 평가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창조경제는 그 실현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창조경제에 대한 로드맵 작성에 특히 신중해야 한다. 로드맵은 이미 가본 적이 있거나 보이는 길을 찾아가는 데 유용하다.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융합기술혁명은 다양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결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과 수준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기대어 로드맵을 작성하고 정책을 추진한다면 융합을 제대로 촉진하지 못할 수 있다.



 창조경제를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의를 내리는 일도, 로드맵을 작성하는 일도 하지 말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기술과 산업의 융합 진행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절실한 과제다.



 로드맵에 의지하지 않고 창조경제라는 넝쿨을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포도나무나 등나무, 담쟁이 넝쿨처럼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형상이 바람직하다. 융합 신기술의 산업과 제품들이 넝쿨처럼 뻗어나가도록 튼튼한 지지대를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과거 정책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우선 먼저 깨야 할 틀이 무엇인가부터 점검해야 한다. 창조경제의 생태계에서 기술과 산업의 자유로운 융합 발전을 방해하는 기존의 제도·정책·관행들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존재하는 부처 간, 부처 내 칸막이를 제거할 방도를 찾는 일도 시급하다. 융합된 성과를 기대한다면 융합된 정부가 요구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 내 협업이 잘 이뤄져야 한다. 모든 부처와 부서가 주연의 역할만 고집하지 않고 조연 역할도 기꺼이 맡아 할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조연의 역할을 도맡은 부처와 부서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창조경제 시대에는 로드맵에 의한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 경로 개방성이 요구된다. 기존의 산업정책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산업융합 정책은 그 방향을 예측하기보다 사회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경제사회적 요구를 탐색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할 경제주체, 특히 기업들 스스로 창조경제를 이끌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기술과 산업의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의 구현을 위해서는 결국 ‘가본 적 없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융합이라는 현상은 그 자체가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러므로 기술과 산업의 융합을 촉진하는 정책 또한 기존의 산업정책과 같은 틀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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