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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대처와 이승만을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3.04.11 00:51 종합 33면 지면보기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하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떠올렸다. 대처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위태로웠던 영국을 재건했고,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거쳐 대한민국을 창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공산주의와 정면으로 맞선 삶도 비슷하지만, 사후 평가 논란까지 닮은꼴이다.



 지금 런던 의회에는 조기가 걸려 있다. 추모 행렬이 이어진다. 자택 앞엔 꽃다발과 함께 “사랑하는 조국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모셨던 가장 위대한 총리였습니다”라고 적힌 카드도 놓여 있다고 한다.



 정반대의 풍경도 보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생전의 적들은 혹평을 쏟아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는 대처의 사망을 축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마녀는 죽었다”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이도 있다. 메즈 타이슨 브라운(23)이라는 시민은 대처의 자택 앞에 우유 한 병을 갖다 놓았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대처는 어린 시절 내 우유를 빼앗아갔다. 그녀는 노조를 와해시켰고, 공공주택 정책을 망가뜨렸으며, 근본적으로 이 나라를 분열시켰다”는 말로 ‘우유 한 병’의 의미를 밝혔다.



 ‘우유 한 병’의 역사는 대처가 1970년 교육부 장관을 지낼 때부터 시작된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초등학생 무상 우유급식을 폐지했다. 당시 영국의 복지 수준은 대단했다. 그때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복지 비용을 줄인 신자유주의자 대처에게 욕을 퍼붓는다. 대처의 지지자들이 볼 땐 고질적 영국병(英國病)을 퇴치한 영웅인데,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승만 평가 논란이 오버랩된다. 지난해 11월 나온 동영상 ‘백년전쟁’은 이승만을 친일파이자 도덕적 파렴치한으로 비난한다. 반면 곧 선보일 동영상 ‘건국의 예언자 이승만’은 그의 독립운동과 건국정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한다.



 대처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며 줄곧 독재자 소리만 들었다. 그의 삶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최근의 일이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친일파 논란에서 보이는 진보좌파 진영의 국가에 대한 인식이다.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공동대표에 따르면 유럽 좌파는 이미 오래전 ‘선진국형 진보’로 진화했다. 국가를 절대화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해방 68년, 건국 65년을 맞는 오늘의 시점에서까지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무화시키는 듯한 모습이 문제다. 대통령 평가 논쟁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보수·진보가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진보진영이 먼저 풀 숙제가 있다. 건국에 대한 시각 조정이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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