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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죽지않는다 … 지금부터 르네상스다

중앙일보 2013.04.11 00:40 종합 25면 지면보기
게르하르트 슈타이들(63)은 인쇄와 출판을 하나의 예술로 끌어올린 장인이다. 그는 “디지털이 아무리 발달해도 종이책이 갖고 있는 아날로그 가치를 절대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책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게 내가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한 비결이었다.”

세계 아트북의 거장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방한
예술가들의 작품집으로 명성
대림미술관서 ‘하우 투 …’전시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63·Gerhard Steidl)의 말이다. 과장, 혹은 허풍이 아니다. 책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다.



 슈타이들은 세계적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와 에드 루셰,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 팝아트 작가 짐 다인 등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집을 내고 있다. 할도르 락스네스·귄터 그라스 등 노벨문학상 수장자의 책도 냈다. 현재 전세계에서 한 해 700~800명의 아티스트들이 출간을 의뢰하기 위해 슈타이들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가 11일부터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전시를 위해 방한했다. 출판과 인쇄과정이 예술로 승화되는 모습을 다양한 시각자료로 보여준다.



‘How to Make a Book …’ 전시 포스터.
 9일 만난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반대다. 앞으로 종이책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항상 사람들이 말하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사람들이 비용을 줄인다며 싸구려 종이를 찾고, 싼 인력을 찾을 때 그 반대로 했다. 성공의 열쇠는 퀄리티에 있다”고 했다.



 -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작가·아티스트와 함께 일하는 출판인이자 인쇄업자다. 그 중 인쇄업자라는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종이책 시대는 갔다’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일을 통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보았으면 한다.”



 -‘성공적인 출판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흔히 돈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내 관심사는 돈이 아니다. 돈을 충분히 벌고 있지만, 책으로 번 돈은 책 만드는 일에 고스란히 재투자하고 있다. 나는 포르셰를 몰지도 않고, 값비싼 관광도 하지 않는다. 내게 성공이란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고, 그들의 비전을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다. 슈타이들 책을 통해 지적인 콘텐트를 발견하게 하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없다.”



 - 높은 품질을 유지해온 비결은.



 “다른 출판사들과 반대로 갔다. 주식회사 대신 철저하게 독립 출판사로 운영한다. 또 한 지붕 아래서 편집과 디자인, 인쇄 등 모든 공정을 진행한다. 다른 출판사들은 돈을 벌면 규모를 키워갔지만, 나는 양적 성장에 관심이 없다. 책에 대한 내 관심을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책값을 최대한 낮게 하면서 퀄리티를 어떻게 최상으로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커펠트의 작품집.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라거펠트는 슈타이들하고만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종이책 르네상스를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을 봐라. 어느 시간에 방문했느냐에 따라, 전시장에 빛이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이처럼 슈타이들은 종이책 형태로 전하는 갤러리를 추구한다. 햇살이 좋은 날, 공원이나 테라스에 앉아 잘 만들어진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이야말로 진정 럭셔리한 일이다. 종이의 질감, 냄새, 아름다운 활자체와 잘 인쇄된 색상과 이미지가 주는 즐거움 등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채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감성은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다.”



 - 젊은 작가들과도 일을 하나.



 “물론이다. 1년에 250종의 책을 내는데 이중 60~70종이 문학서적이고, 나머지가 아트북이다. 특히 귄터 그라스의 작품으로 많은 저작권료를 받고 있는데, 이 돈은 모두 젊은 창작자들을 발굴하는데 쓴다. 내게 럭셔리한 삶이란, 젊은 작가들과 일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 경쟁 출판사를 꼽는다면.



 “훌륭한 아트북을 내는 출판사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지다. 50명의 직원 중 20명은 전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인데 그들도 나의 동지다. 한국을 비롯해 터키·중국에서든 최고 품질의 책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싶다. 아날로그 종이책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내 사명이다. 지금 내가 하는 전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디지털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안다, 한국도 책의 전통이 있는 국가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책을 만드는 데 이상적인 곳이다. 자동차나 스마트폰만 수출할 게 아니라 책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했으면 한다.”



 - 슈타이들 사옥(일명 ‘슈타이들빌’·슈타이들 마을)이 특별하다고 들었는데.



 “럭셔리 스위트룸부터 작은 부엌을 갖춘 방까지 모두 12 개의 작은 아파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전문 요리사도 있다. 전세계에서 찾아온 아티스트들이 항상 이곳 방을 채우고 있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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