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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491> 20세기를 빛낸 발레리나 톱10

중앙일보 2013.04.11 00:06 경제 10면 지면보기



진짜 백조 몸짓 파블로바, 최고의 ‘지젤’ 프라치, ‘6시 포즈’ 길렘 …









































최민우 기자
발레의 꽃은 역시 발레리나다. 그가 세상의 중력을 외면하듯 한껏 뛰어오를 때 관객은 집중했고, 인간의 신체를 거부하듯 가냘픈 움직임으로 무대를 거닐 땐 숨죽였다. 발레리나가 무대의 별로 추앙받은 건 언제부터일까. 혹시 이들이 있어 발레가 중세의 예술을 넘어, 첨단 미디어가 넘쳐나는 현재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20세기를 빛낸 발레리나 10명을 꼽아봤다. 최민우 기자









1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1881~1931) 1905년 미하일 포킨의 ‘빈사의 백조’ 공연. 창백한 얼굴의 여인이 길고 여린 팔을 흐느적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흡사 진짜 백조 한 마리가 눈앞에서 처절하게 날갯짓을 하는 것을 연상시켰다. 관객에게 안나 파블로바가 누구인지, 아니 발레리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발레리나란 무릇 토슈즈를 신고, 어떤 기본 테크닉을 익혀야 하며, 가녀리고 섬세한 감성을 내면화해야 함을 파블로바는 알고 있었다. 우아하고 시적인 표현력,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되는 능력은 그녀의 전매특허였다. 동시대 미국의 이사도라 던컨이 현대무용의 개척자라면, 러시아의 파블로바는 20세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 발레의 품격을 온 몸으로 표출해냈다.



2 알리시아 마르코바(Alicia Markova·1910~2004) 영국 발레의 대모다. 최초의 영국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영국 무용 발전에 핵심적 인물이었다. 14세 때 프랑스의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에 입단해 활동했으며, 1920년대 후반 영국으로 돌아와 ‘발레 램버트’(1931~35)와 ‘빅-웰즈 발레단’(1932~35)에서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영국을 떠나 미국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에서 활동하는 등 전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객원무용수로 활동했다. 서정성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무용수로서 갖춰야 할 민첩함과 표현력을 두루 갖춰 드라마성을 중시하는 영국 발레의 전통을 닦았다. 1962년 은퇴 후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발레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3 이베트 쇼비레(Yvette Chauvire·1917~) 프랑스 발레의 자존심이다. 193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 1937년 영화 ‘백조의 죽음’에 출연했고, 24세가 된 1941년 ‘이슈타르’란 작품에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18분 동안 인상적인 독무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곧바로 에투왈(수석무용수)로 승격할 수 있었다. 특히 쇼비레의 ‘지젤’ 연기는 압권이었다. 또 다른 업적은 발레 교육을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1963년 파리 오페라극장 부속 발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1970년부턴 파리 국제 무용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영국 로열 발레단,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등에서 객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은퇴 후 그가 각국의 발레 스타일을 매뉴얼화해 후학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큰 자산이었다. 이런 공로로 프랑스 문화 훈장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4 마고트 폰테인(Margot Fonteyn 1919~91) 무대 위 영국 여왕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엄 있고 고귀한 발레리나로 꼽힌다. 그는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었다. 위대한 건 그 재능을 장기간 걸쳐 발휘했다는 점이다. 발레리나로선 회갑이라는 40대에 접어들며 폰테인에겐 또다른 전기가 마련됐는데, 바로 러시아에서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1938~93)를 만난 것이다. 1961년 자선 갈라공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둘은 이후 1979년 폰테인이 60세로 은퇴할 때까지 ‘세기의 커플’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1975년 런던에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4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이때 89회 커튼콜은 현재까지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폰테인의 무대 밖 현실은 불우한 편이었다. 1955년 파나마 정치인 로베르토 아리아스와 결혼했는데, 1964년 남편이 총탄 공격을 받아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말았다. 폰테인이 오랜 현역 생활을 한 이유이기도 했다.



5 마야 플리세츠카야(Maya Plisetskaya·1925~) 러시아 무용수다. 1932년부터 볼쇼이 발레학교를 다녔고, 1943년 졸업과 동시에 볼쇼이 발레단 솔로이스트로 입단했다. 1959년엔 볼쇼이 발레단과 함께 최초의 미국 순회 공연을 가졌다. 그녀는 신체적 표현력을 돋보이게 하는 유연성과 힘을 갖춘 무용수로, 가벼운 느낌의 낭만 발레리나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역할에 강한 연극성과 열정을 불어넣었다. 특히 ‘백조의 호수’ 오데트-오딜 역과 ‘돈키호테’ 키트리 역은 으뜸이었다. 완벽한 기교를 바탕으로 러시아 발레 테크닉의 교과서라는 평가다. 1960년대부턴 본격적인 연기에 도전, 영화 ‘곱사등이 말’ ‘안나 카레니나’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6 카를라 프라치(Carla Fracci·1936~) ‘발레’가 이탈리아어 ‘발라레(춤추다)’에서 왔듯, 발레의 고향이라는 이탈리아. 그녀는 이탈리아 발레의 상징이다. 역대 최고의 ‘지젤’로 회자되고 있다. 1967년부터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객원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1968년 9월 에릭 브룬과 공연한 ‘지젤’ 유럽 투어는 이듬해 영상(존 랜치베리 지휘, 베를린 도이치 오퍼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영상물이 인기를 끌며 여전히 신비로운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발레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프라치를 세계 톱클래스 발레리나로 우뚝 서게 만든 계기였다. 그의 특징은 정중한 포르 드 브라(상체 움직임)와 가지런한 걸음걸이. 청순함과 우아미를 동시에 갖추었다. ‘지젤’ 연기로는 국내 최고라는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프라치를 모르고 지젤을 추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7 나탈리아 마카로바(Natalia Makarova·1940~) 러시아 발레리나다. 1959년 레닌그라드(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 수석까지 올랐다. 정작 그가 유명해진 건 미국에서다. 1970년 서유럽으로 망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서 꽃을 피웠다. 문화적 전통이 약한 미국은 마카로바 영입에 공을 들였고, 그의 수혈에 이어 동시대 재닛 리드, 뒤이어 알레산드라 페리와 니나 아나니아쉬빌리 등이 연이어 활약함으로써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는 ‘프리마 발레리나의 천국’이라는 전통을 쌓아가게 됐다. 대표작은 ‘라 바야데르’. 뛰어난 기량은 물론 여유로운 표정과 연기로 관객과의 교감에 능한 무용수였다. 이런 재능을 발휘해 1980년대 들어선 뮤지컬 ‘그대 발끝으로’에 출연해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다. 다재다능한 발레리나였다.



8 수잰 패럴(Suzanne Farrell·1945~) 안무가 조지 발란신(1904~83)의 뮤즈였다. 미국 신시내티 출신으로 발란신이 원하는 완벽한 발레리나의 신체조건, 즉 긴 다리와 팔, 긴 목, 작은 머리, 앙상함 등이 패럴에게 있었다. 패럴을 통해 발란신은 영감을 얻었고 작품으로 승화됐다. 대표적인 작품이 1965년 뉴욕 시티 발레단의 ‘돈키호테’의 둘시네아 역. 순결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담아낸 패럴의 모습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패럴은 발란신의 뮤즈로만 남지 않았다. 1969년 동료 무용수인 메지아와 결혼하고 발레단을 나온 뒤엔 모리스 베자르 작품에 자주 출연했다. 정형미를 중시하는 발란신 무용과 드라마성을 강조하는 베자르 작품에 모두 능했다는 것을 봐도 패럴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9 실비 길렘(Sylvie Guillem·1965~) 실비 길렘 하면 이른바 ‘6시 포즈’다. 오른쪽 다리를 쭉 들어올려 귀에다 갖다 대, 일자로 만드는 자세를 말한다. 너무나 유연해 “기형에 가깝다”는 말까지 듣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체조 교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기계 체조를 배웠고, 그건 훗날 그의 유연성·근력·탄력에 힘이 됐다. 16세 때 파리 오페라 발레단 정식 단원이 됐으며, 입단 3년 만에 전격적으로 에투왈로 승격했다. 350년 역사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1990년대 초반 그는 파리를 나와 영국 로열 발레단의 객원 무용수를 선택했고, 이후 윌리엄 포사이드, 제롬 로빈스 등 현대 무용가와의 작업에 공을 들였다. 2004년부턴 민속춤 등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발레라는 하나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장르 융합에 나서고 있는, 21세기형 발레리나 모델로 자리매김 중이다.



10 줄리 켄트(Julie Kent·1969~) 그는 영상 세대의 수혜자다. 줄리 켄트를 발레팬에게 강하게 인식시킨 건 1986년 영화 ‘댄서스’를 통해서였다. 바리시니코프가 나온 이 영화에서 17세의 앳된, 아직 단역에 불과했던 줄리 켄트는 청초한 매력을 발산하며 스타로 발돋움했다. 입단 27년차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간판 무용수다.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고, 섬세한 연기력은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임신한 상태에서도 연습에 게으르지 않고, 공연도 해 화제가 됐다. 출산 3개월 만에 전막 발레에 출연할 만큼 자기 관리도 뛰어난 편이다. 출산과 무대라는, 발레리나에겐 양립하기 어려운 영원한 숙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 후배들에게 무대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또 다른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도움말=무용평론가 장인주, 무용 컬럼니스트 한정호·황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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