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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사심과 노욕 사이

중앙선데이 2013.03.30 22:29 316호 31면 지면보기
30일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아마도 힘든 날이었을 거다. 우선 오전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총리 후보자와 장·차관급 6명이 줄줄이 낙마한 인사 실패에 대해서다. 하지만 정치권·언론의 평가는 별로였다. 토요일에 두 문장짜리 청와대 비서실장 명의의 사과문을 대변인이 대독해서다.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누가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후엔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열린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 청와대 참모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제발 민심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좀 전달하라”는 타박을 받았다. 국정기획수석이 국정과제를, 미래전략수석이 창조경제를 설명했지만 “못 알아듣겠다” “추상적이다”란 핀잔도 들었다. 어느 수석은 박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했다가 “여기 대통령이랑 10년 이상씩 일한 사람들도 있는데 에피소드 들으러 온 것 아니다”란 빈축을 샀다.

 도대체 지금 청와대는 뭐가 문제일까. 대통령도 불통이지만 참모들이 ‘말씀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는 게 세간의 시각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청와대 참모 A씨는 “억울하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전언이다.

 “이번 청와대 수석들의 특징을 꼽자면 모두 온화하다. 모두 그레이스(우아)하다. 회의도 정치인들 회의와 달리 조용한 편이다. 학구적인 분위기다. (나중에) 공천 욕심 있는 사람이 없다. 나이가 다들 많아서 사실상 이 자리가 마지막이다. 한참 아래 후배들이 장관을 하고 있으니 장관 욕심도 없다. 사심이 없는 거다.”

 결국 그의 말은 “나이 많고 온화하고 학구적이고 ‘그레이스한’ 사람들이다 보니 정무적 판단에 따른 직언을 못하는 거지 자리 욕심이 있어서는 아니다”라는 취지다. 실제 청와대 실장·수석 12명의 평균 연령은 61.1세다. 이명박 1기 청와대의 평균(53.6세)보다 7.5세나 많다. 노무현 정부(50.2세)와 비교해도 ‘나이 든 청와대’다.

 그런데 납득이 안 된다. 정말 사심이 없다면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더 잘할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탈세·성접대·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장·차관 후보자에 대해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몇몇 후보자는 임명해선 안 된다고 했어야 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 B씨에게 물어봤다. A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심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청와대 참모 중엔 한때 잘나가다 물러난 뒤 다시 쓰임을 받은 이가 많다. 그런 사람일수록 윗사람 눈치를 더 본다. 자리가 있다가 없어졌을 때 사람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자리를 오래 보전하려는 노욕(老慾)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거다.”

 둘 중 한 사람의 말은 맞거나 틀릴 것이다. 참모들 개인마다 속내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A보단 B의 말에 기자의 고개가 더 끄덕여지는 건 뭣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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