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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학위가 뭐길래

중앙선데이 2013.03.31 02:02 316호 18면 지면보기
“학위 논문들을 대신 써주느라 몇 년 동안 저는 교수님의 노예였어요. 정작 대필이 끝나니까 수고비는 교수님이 다 가져가더군요. 시키는 대로 하면 강의를 줄 것이라는 말도 했고, 학회 출장 때엔 1000만원이 넘는 명품시계를 사오라고 시킨 적도 있습니다.” “어머니까지 동원해 교수님 집에 가서 김치를 담가준 적도 있습니다. 안 그러면 미운 털이 박히기 십상이고, 강의 하나 맡으려면 교수님 비위를 맞춰야 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요.” “대학 측과 교수가 합작해 학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매년 덧붙여요. 세미나를 해라, 번역을 해라, 갖은 핑계들을 대면서요.” 필자가 모두 임상에서 직접 들은 얘기들이다.

 툭하면 표절 논란이 일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대학 측의 학위와 강의 장사다. 연구할 마음도 없고, 특별히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경력과 취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밟는 학생들도 무죄는 아니다. 깐깐하게 지도해 주는 교수보다 손쉽게 학위를 급조하고 학점도 잘 주는 교수에게 후한 강의 평가를 하고 학생들도 몰린다. 그래서 정석대로 가르치는 교수들이 분하고 억울한 꼴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러스트 강일구
 반대로 시간 강사로 이용만 당하다 사십을 훌쩍 넘기며 백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돈은 없는데 연구는 해야 하는 학생과 교수에게 주는 음성적인 후원금이 아니냐고 강변하는 이도 있겠으나 질 낮은 학위 논문 대필하느라 정작 제대로 연구를 할 시간은 없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진국과 경쟁하느라 피를 말리며 연구에 몰두하는 우수한 교수와 학생들 중에는 셈 빠르고 정치 잘하는 잔머리의 고수들에게 밀려 고생만 하는 이도 많다.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 환경으로 억압과 획일주의로 일관하는 중·고등학교가 곧잘 비난의 표적이 되지만 진짜 심각한 쪽은 대학이다. 교수들 중에는 자신을 뛰어넘을 만한 우수한 제자보다 잔심부름이나 말 없이 해주는 머슴 같은 이들만 옆에 두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교수도 수두룩하다. 앵무새처럼 자신의 철학과 업적을 암송하는 이들과 어울리면 근친상간처럼 심각한 결함을 가진 결과물만 나올 뿐인데 말이다. 집요하게 자신을 공격하고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후계자를 인정하고 키워줘야 학문이 풍성하고 다양해진다.

 박사학위는 벼슬도, 연구를 많이 했다는 징표도 아니다. 그저 연구 방법론을 담당교수에게 지도받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뭐든 ‘빨리, 효율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만이 ‘착한 것’이라는 잘못된 의식구조는 대학 역시 학위를 사고 파는 싸구려 시장터로 바꾸어 놓았다. 차분히 공들이며 기다리지 못하고, 가짜고 엉터리라도 모양새만 갖추면 된다며 덤벼들 때 우리는 ‘악’의 함정에 빠진다. 모든 범죄는 노력 없이 결과만 누리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굳이 석·박사일 필요도 없는 분야까지 교수나 특정 지위를 위해 학위를 요구하며 필요 없는 구색을 갖추려는 풍토도 문제다. 얼마 전 상담했던 북유럽의 한 CEO는 고등학교만 나왔지만 성공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했다. 우리보다 빨리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의 단단한 국력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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