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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 주면 바보" 2만원짜리 와인, 원가는…

온라인 중앙일보 2013.03.31 03:26
지난해 가을, 칠레 와인 ‘비냐 마이포’의 현지 양조장을 방문했을 때다. 비냐 마이포는 국내 최대 와인 대회로 꼽히는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 2010년 대상을 받은 와인. 양조장을 안내하던 와인 생산자 막스 바인로브는 “우리 와인이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서 유난히 인기가 높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 비냐 마이포는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로 국내에서 전문가는 물론 초보자들에게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 와인 값의 진실
“2만원짜리 원가는 2유로"

시음을 위해 자리에 앉자 테이블 위 브로슈어엔 와인 관련 정보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비냐 마이포의 칠레 현지 출고가격. 자료에 소개된 비냐 마이포의 가격은 60달러. 당시 한국 시장에선 그 절반 가격인 3만2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현지 공급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바인로브는 “우리 와인을 수입할 때 가장 큰 매력이 가격 경쟁력”이라며 “한 박스에 그 정도 가격이면 괜찮지 않느냐”고 물었다.



브로슈어에 표시된 60달러는 한 병 값이 아니라 한 박스(12병들이) 기준이었던 것이다. 비냐 마이포 한 병의 출고가격은 5달러에 불과했다. 현지에서 6000원에 출고된 와인이 어떻게 한국 시장에선 그 6배에 달하는 3만2000원에 팔릴까.



수입 와인 값을 비싸게 만드는 ‘주범’은 세금이다. 한국에서 해외 와인을 수입하려면 관세는 물론 주세, 교육세, 그리고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1만원짜리 와인을 수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국경을 넘어오려면 관세 15%가 붙어 1만1500원이 된다. 여기에 주세(30%)로 3450원이 더해져 1만4950원이 된다. 다시 이 주세의 10%에 해당하는 교육세와 별도의 부가세(10%)까지 내면 1만6825원이 된다. 결국 한국 보세 창고에 들어선 순간 70% 가까이 가격이 불어난다.





세금만 와인 값을 높이는 게 아니다. 와인 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도 ‘공범’이다. 종가세 방식이란 수입가가 비쌀수록 세금이 많이 붙는다. 1만원짜리 와인의 세금은 6825원이지만 10만원짜리일 땐 6만8250원이 된다.



수입원가가 올라가면 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유통마진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세금 때문에 높아진 수입 와인 원가는 수입상-도매상-소매상 등 유통 과정을 거치며 천정부지로 뛴다. 지난해 초 정부는 와인 값을 낮추겠다며 주류 수입업자가 도소매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유통 과정을 단순화시켜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의 한 중소 와인 수입업자는 “도소매를 거치지 않게 되면서 독자 유통망을 갖춘 대형 수입업자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며 “중소 수입사들은 도매상을 안 쓰면 영업사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금 등 수입원가 자체를 줄이는 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와인 값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절 지나면 와인 값 문의전화 빗발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와인 중 ‘1865 리제르바 카베르네 소비뇽’(이하 1865)이 있다. 이 와인의 ‘진짜 가격’은 얼마일까. ‘1865’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수입사가 제시한 권장가격은 5만8000원이다.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수입사들이 대부분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을 인터넷에 올리고 싶어 한다”며 “대형 마트들은 할인폭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레스토랑이나 와인숍에선 정상가로 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 ‘1865’는 얼마에 팔릴까. 백화점에서는 5만2000원, 대형마트에선 4만3000원이 정가다. 하지만 창고형 할인점에서는 3만원대 후반, 와인 전문점에선 3만원대 초반으로 뚝 떨어진다. 문제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정가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20~30% 할인을 수시로 하기 때문이다. 할인폭이 클 때는 2만원대에도 판다. 와인 동호회에 활동 중인 이채영씨는 “주위에서 제값 주고 와인 산 사람이 바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대부분 할인행사를 기다려 와인을 산다”고 소개했다.



높은 세금과 유통단계 마진에 이어 와인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수입사들의 높은 가격 책정도 꼽힌다. 와인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수입사들은 소비자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한다”며 “할인행사를 통해 파는 게 익숙하다 보니 아예 가격을 높게 정한 후 세일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입사가 판매가를 높게 책정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내 업체들이 선물용 와인 시장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물용 와인의 경우 실구입가는 할인행사를 통해 낮아지더라도 정가는 높을수록 좋다. 선물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싼 와인일수록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 와인 수입사의 한 마케팅 담당자는 “설이나 추석 연휴가 끝나면 수입사 사무실마다 와인값을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며 “자기가 선물받은 와인이 얼마인지 확인해 달라는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으로 2만원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꼽힌다. 이 와인의 현지 출고가는 얼마일까. 국내 한 수입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2만~3만원대 선물용 프랑스 와인의 현지 출고가는 1.5~2유로”라며 “세금과 고정비용까지 포함해도 3유로 안팎”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입원가 5000원짜리의 경우 할인행사에서 9900원에 팔리거나 3만원짜리 선물세트로 포장돼 팔려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들, 직수입으로 가격 낮춰



와인 값이 비싸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한국 와인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오상용 주한농업무역관 상무관은 “국내 와인 수입사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수입물량이 작다 보니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와인 자체를 비싸게 사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대형마트들이 수입사나 협력업체를 통해 공동기획 방식으로 공급가격을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마트는 유니언 와인과 손잡고 미국 오리건에서 생산된 와인 ‘언더우드’를 국내 시장에 내놓았다. 국내 판매가가 1만8000원으로 미국 현지 판매가 15달러(1만6650원)와 비슷한 수준. 이마트의 신근중 주류 바이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사라졌고, 해당 양조장과 계약할 때 대규모 물량을 소화하겠다고 약속해 수입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며 “앞으로 이마트 자체 브랜드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도 병당 9900원인 ‘심플리 와인’으로 와인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인 심플리 와인은 판매 두 달 만에 2만 병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인기다. 홈플러스 모기업 테스코는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칠레 등 세계 유명 와인 산지에서 직접 와인을 조달해 수입원가를 낮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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