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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2002년 남아공에선 어떤 일이 … 패션으로 돌아본 욕망과 열정

중앙일보 2013.03.30 00:36 종합 23면 지면보기
옷 입은 사람 이야기

이민정 지음, 바다출판

240쪽, 1만2800원




“유행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다.”



 영국 심리학자 존 칼 플뤼겔의 통찰이다. 이 책은 그 통찰을 실례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정색을 한 책은 아니다. 패션사의 갈피를 뒤져 유행이 사람과 사회, 그리고 역사를 휘두른 19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영어 관용어 중 ‘모자쟁이처럼 미친(mad as a hatter)’란 게 있다. 모자를 만들다가 미친 이들이 많았기에 나온 표현이다. 여긴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다. 중세 유럽에선 모자가 신분의 상징이었다. 실크 햇이 등장하기 전에 펠트 햇이 인기였는데 펠트는 동물 털을 암모니아에 치대 얻은 천이다.



 그러다가 질산과 수은을 섞은 용액을 사용하면 펠트 생산이 훨씬 효율적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모자공장에서 수은과 씨름하던 멀쩡한 청년들이 수은 중독에 걸려 손 떨림, 발진, 탈모, 기억상실의 단계를 거쳐 미쳐갔다.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까지 만연해 이런 유행어가 생겨났던 것이다.



 자유를 위한 몸부림도 보인다. 캐나다 대학생 그웬 제이콥은 1991년 한여름 무더위를 못 이겨 가슴을 내놓은 채로 걷다가 풍기문란죄로 기소됐다. 지방법원이 “여자의 가슴은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을 통해 남성에게 성적인 자극을 주는 여성 신체의 일부”란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자 그는 주 법원에 상고했다.



 법원은 여자 가슴과 남자 가슴이 다른 명쾌한 이유를 찾지 못해 결국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남성이 웃통을 벗고 다니는 만큼 여성도 가슴을 ‘해방’시켜야 마땅하다는 ‘탑 프리(Top Free)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런가 하면 2002년 남아공에서 열린 여성의 가슴골을 보여주는 ‘내셔널 클리비지 데이(National Cleavage Day)’는 여성운동인지 장삿속인지 헷갈린다. 세계적인 브래지어 회사인 원더브라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의류직물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은이는 ‘어디서 이런 자료를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풍성한 자료들을 제시했다. 덕분에 책의 완성도가 높다. 단순한 이야깃거리를 넘어선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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