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지식] 공포와 폭력, 따돌림의 두 얼굴 지우려면

중앙일보 2013.03.30 00:35 종합 23면 지면보기


이지메의 구조

나이토 아사오 지음

고지연 옮김, 한얼미디어

264쪽, 1만3000원




“도망칠 수 없는, 출구 없는 세계란 공포다.”



 일본 메이지대 사회학 교수 나이토 아사오의 말이다. 이지메학(學)의 전문가인 그에 따르면, 왕따(이지메, 영어로는 Bullying)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마치 기생하는 생물들처럼 특정 인물들 안으로 들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파괴시킨다. 일본·한국의 학생들이 가해자를 지목하는 유서를 남기고 결국 자살을 택하는 이유다.



 이 책은 이지메의 발생 원인을 구조와 제도 차원에서 살핀다. 나아가 그 심리적 배경과 정치적 역학을 함께 짚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이지메를 하게 되는 데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을 투사해 피해자를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조종해 분노를 방출하는 것을 말한다.



 또 “자신이 견디기 힘든 체험 양식을 타인을 일종의 도구로 이용해 재체험”한다는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도 인용한다. 예컨대,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에서 극단적인 폭력아버지를 모방해,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심지어 다시 아버지를 학대하는 폭력의 악순환은 ‘투사적 동일시’의 기제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질문도 던진다. 가해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일까. 공부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고 특별히 관심을 두는 취미활동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계획이 없어 “심심해 죽겠는데, 부모나 학교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면” 누군가 약한 사람을 잡아 자신을 발산해야 속이라도 시원할 것이란 이야기다. 가해자는 주변의 가해자-부모, 교사, 일진 선배, 영화속 깡패 등등-를 모방해 누군가를 괴롭힐 때 쿨한 자기가 부각이 되면서 살아가는 의미도 찾은 듯 착각한다는 것이다.



 또 이지메의 배경에는 집단에 순응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하는 대부분의 방관자 학생들과 ‘자신의 전능감’을 맛보려는 우두머리 가해자들의 연결고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정치적 역학이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관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요즘 인터넷 등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익명의 댓글로 과도하게 비난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따돌림 현상을 단순히 폭력적인 매스컴이나 게임, 입시 중심의 경쟁적 분위기에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우선 학교의 제도를 고치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학교는 이미 답답하고 가혹한 수용 공간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순응하는 감정노동을 강요하지 말고, 교사도 이지메의 가해자가 되는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양계장의 닭처럼 담임 밑의 ‘학급제도’로 관리하는 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택하는 대학식의 커리큘럼 방식 등을 도입해 자율성을 더 주고, 학생들에게 싫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둘 권리도 줘야 한다고 제안한다.



 내향적인 사람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놓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Quiet)의 심리적 접근과는 다르지만, 확고한 자기상이 완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자유를 부여하자는 제안은 심리학자들의 처방과 일맥상통한다. 과거에는 학교가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만 치우쳐 있었다며, 앞으로는 자기 개성의 발견과 관계 형성을 배우는 면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30년 전, 순진하게도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Pedagogy)를 읽으며 한국이 잘살게 되면 학생도 훨씬 행복해질 줄 알았다. 약한 이에게 가하는 폭력의 문제는 강하고도 약한 짐승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인류의 큰 숙제다. 짐승은 강한 대상을 만나면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자기보다 약한 대상은 죽이거나 조롱과 놀잇감으로 만들거나, 아예 무시한다. 하지만 나와 다르고 약한 대상이 나 때문에 겪는 아픔을 공감하고 미안해 할 때 인간은 비로소 사람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융 분석심리학자.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최근 한국인의 12가지 콤플렉스를 분석한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을 냈다. 저서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오십후애사전』 등.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