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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무줄’ 출국금지, 명확한 잣대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3.03.30 00:16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여부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논란은 검·경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현행 출국금지 제도의 문제점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제 검찰이 경찰의 김 전 차관 출국금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김 전 차관이 성 접대 의혹 사건과 관련됐다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은 “조사 기록까지 첨부했는데 관련성에 관한 소명이 안 됐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출국금지를 다시 요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특정인의 출국금지 여부는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그런 문제를 갖고 검·경이 앙앙불락하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공언해 온 김 전 차관이 해외로 도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경찰은 출국금지보다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핵심은 출국금지의 잣대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그가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 등의 피고발인이란 이유였지만 김 전 차관과 비교하면 균형에 맞지 않는다. 나아가 기업인을 비롯한 국민 입장에선 출국금지가 남발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수사기관·국세청 등의 요청에 따른 출국금지자가 한 해 수천 명(2008년 7760명)에 이른다. 출입국관리법에 규정된 기준이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등으로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검찰은 “사안의 경중과 소환의 용이성, 도피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하지만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까지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크다.



 아무리 수사상 필요성이 있다 해도 국제화된 사회에서 출국 길을 끊는 것은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제한임은 물론 사업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또 그 사실이 공개되면 범죄혐의자인 양 낙인찍히게 된다. 이제라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에 나갈 수 있을지를 검찰 마음에 맡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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