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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오키나와-나가노의 신세 역전

중앙일보 2013.03.30 00:16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총국장
‘충격! 장수마을에서 전락’.



 얼마 전 일본 오키나와 지역신문들의 1면 톱 제목이다. 1975년부터 무려 38년 동안 전국 1위였던 오키나와 여성의 평균수명이 3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남성은 더 처참하다. 85년 1위에서 점차 순위를 낮추더니 올해는 47개 광역지자체 중 30위. ‘세계 최고 장수촌’의 명성은 옛이야기가 됐다.



 한데 그 배경이 흥미롭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여전히 남녀 모두 오키나와가 1위다. 정작 오키나와를 장수마을에서 끌어내린 건 40~50대 중년층의 조기 사망률.



 고야(오키나와의 쓴 오이)·해초 같은 전통식을 주식으로 삼아 온 오키나와 고령자와는 달리 이들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영향 때문인지 청소년기부터 스테이크와 패스트푸드에 탐닉했다. 그 결과 오키나와의 비만율은 현재 42%. 전국 평균 26%를 훨씬 웃도는 부동의 1위다.



 오키나와를 대신해 장수마을로 부상한 건 나가노(長野)현. 평균수명 남성 80.88세, 여성 87.18세로 공히 전국 1위다. 하지만 나가노도 60년대까지는 전국 하위권이었다. 염분 과다 섭취로 뇌졸중 사망률은 전국 1위였다. 이를 뒤바꾼 주역은 나가노 스와(諏訪) 중앙병원의 가마타 미노루 명예원장.



 그가 70년대 중반 ‘장수 강연’을 다닐 때의 회상이다.



 “염분 섭취 좀 줄이라고 열심히 설파하고 다녔는데, 동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진지하게 듣더군요. 그런데 강연 후 ‘말씀 너무 재미있었어요’라며 저 먹으라고 노자와나(나가노 특산 붉은 순무) 소금절임을 접시 가득 담아 내놓는 거 있죠. ‘억’ 소리가 나올 뻔했어요. 그러더니 그 위에 간장까지 듬뿍듬뿍 뿌리는 걸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어요.”



 안 되겠다 생각한 가마타는 ‘절임은 하루에 반 접시’‘라면 국물 절반 남기기’ 등 구체적인 식생활 개선 운동을 단계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병원 진료가 끝나면 동료들과 지역사회 곳곳을 돌았다. 연간 평균 80회. 구호는 “우리도 오키나와 사람처럼 오래오래 살아보자.”



 그의 열정적 노력과 치밀한 전략 덕분에 나가노현의 학교급식도, 동네 식당 메뉴도 바뀌었다. 1인당 염분 섭취량도 50% 이상 줄었다. 결실이 맺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년.



 세상은 돌고 돈다지만 정말 그렇다. 나가노가 꿈꾸던 오키나와가 ‘장수촌’에서 ‘비만촌’으로 둔갑하고, 오키나와가 ‘소금쟁이’라 깔보던 나가노는 ‘건강촌’으로 탈바꿈하니 말이다.



 한국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생 불가능한 실패 사례’로 손가락질하던 일본 경제가 꿈틀거린다. ‘아베노믹스’ 한 방에 판세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소금기 빼고 남몰래 단련한 근육질 덕분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 98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 덜미를 잡혔다. 잘나간다 우쭐하며 덩치만 키우다 비만 체질이 돼 버린 건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가 오키나와 신세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김 현 기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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