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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짝퉁 시계 시장을 키운 건 8할이 □ 다

중앙일보 2013.03.30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패션 마케팅을 하는 A씨는 볼 때마다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브랜드의 XX모델이라고 자랑한다. 보통 반년에 한 번씩 바꾸고, 짝퉁임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좋은 짝퉁을 사는 노하우도 있단다. 특정 요일, 모처에 새벽 1시쯤 가서 기다리면 007가방을 든 사람이 나타난단다. 그러면 어디선가 남자들이 튀어나와 시계를 고른다. 한 시간쯤 지나면 판매인은 가방을 닫고 홀연히 사라진단다. 그는 “여러 짝퉁을 접해봤지만 이 좌판 상품이 최고”라고 했다. 흔한 중국산이 아니라 국내 ‘장인’이 직접 만든 국산품이기 때문이란다. 짝퉁에도 품격이 있다는 거다.



 짝퉁 시계에 유난스러운 사랑을 표하는 남자들은 많다. 이들을 보며 느끼는 건 짝퉁을 대하는 남녀의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여자들은 짝퉁을 진짜인 척하며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자들은 짝퉁임을 숨기지 않고, 그걸 구한 ‘무용담’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점조직처럼 정보를 탐문해 ‘손 잘릴’ 각오를 하고 모처까지 찾아가 샀다거나 새벽 1시에 반짝 열리는 인터넷 오픈마켓을 샅샅이 뒤졌다는 둥 믿거나 말거나인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진짜 명품 시계 산 것을 기념해 중국에 출장 간 길에 자기 시계와 똑같은 짝퉁 10개를 사서 세관의 눈을 피하는 등 각종 ‘난관’을 뚫고 가져와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보았다.



 요즘 시계는 짝퉁 명품계의 총아다. 단속했다 하면 걸리는 게 시계다. 잘나가던 짝퉁 백도 시계 앞에선 초라해질 정도다. 우선 단속에 걸린 규모가 확 다르다. 며칠 전 해양경찰청은 정식 통관된 코일 뭉치 속에서 정품가 기준 4000억원대의 짝퉁 시계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관세청에서 지난해 적발한 짝퉁 의류·가방 등은 모두 합쳐 400여 건에 정품가 기준으로 약 3500억원이었는데, 시계는 48건에 3000억원이 훌쩍 넘었다.



 명품시장에서도 시계는 요즘 전성기를 누린다. 지난해 백화점에선 명품 판매 성장세가 한풀 꺾였는데, 유독 시계만 20~30% 성장세를 구가했다. 명품 시계에 꽂힌 남자들이 늘면서 짝퉁 시계 시장도 호황이다.



시계는 자동차와 함께 남성들의 과시욕과 기계에 대한 애착을 자극하는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남성은 치장을 시작하면 먼저 시계에 눈을 뜬단다. 물론 남자들이 치장에 관심을 보이는 건 좋은 소식이다. 그만큼 깔끔한 매너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짝퉁 시계 열풍엔 그런 치장 욕구나 허영심만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모험의 기회가 막힌 도시남들이 일탈과 모험을 만끽하거나 배포를 과시하려는 과시욕도 작용하는 걸로 보인다. 이게 짝퉁 시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면 좀 과한 지적일까.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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