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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배관 구멍 하나 못 챙기는 글로벌 기업

중앙일보 2013.03.25 00:24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영훈
경제부문 기자
삼성·LG·포스코·SK ….



 내로라하는 한국 대표 기업의 명단이다. 그러나 최근 이 명단은 크고 작은 사고를 낸 불명예 기업의 리스트가 됐다. 올 들어 대외적으로 알려진 기업의 안전사고는 9건. 이 가운데 6건은 이달에 일어났다. 나흘에 한 건꼴이다. 22일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터졌다. 오전 10시 SK하이닉스 청주 공장에선 염소 가스가 누출됐고, 같은 날 오후 8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선 불이 났다. 포스코가 세계적으로 자랑해 온 파이넥스 공장의 용융로에서다. 오후 10시엔 경북 구미의 LG실트론 공장에서 불산 등이 유출돼 소동이 벌어졌다. 이달 14일 여수 대림산업 참사에 대한 수습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사고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들은 “또”를 연발했다. 시민의 걱정은 훨씬 더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도대체 안전에 대한 감각은 상실한 건가”(아이디 늘새롬), ‘일본에서 지진으로 화학물질 누출됐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 우린 지진보다 더 무서운 안전불감증을 가지고 산다’(아이디 debop68) 등의 글이 잇따랐다.



 사고의 앞뒤를 따져보면 이런 걱정은 더 커진다. 구미 LG실트론 공장은 지난 2일에도 유사한 사고가 났던 곳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누출 원인은 배관에 난 구멍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업체에서 배관 구멍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다. 지난 1월 불산 누출 사고가 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특별감독에선 193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세계 1등이 받아 든 안전 성적표치곤 초라하다. 뒤처리는 더 문제다. 약속이나 한 듯 사고에는 늑장 신고와 은폐 논란이 뒤따른다. 인터넷 카페에 올린 시민의 제보를 보고 소방당국이 수습에 나섰다는 식이다. 업체들은 한결같이 “오해다” “신속한 조치를 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해 구미 불산 사고를 일으킨 중소기업과는 다르다. 이러쿵저러쿵 욕을 해도 국민이 그래도 믿고 의지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해외 사업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대기업은 국가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대기업 안전 사고가 국가 전체의 신뢰 문제로 이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최근 사례에서 보듯 산업현장의 사고는 인명과 지역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안전 관리는 기업 활동의 기본이다. 미국은 1976년, 독일은 91년부터 위험 물질 유출 사고에 대해 엄격한 기업 책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기업을 믿고 그 공장 바로 옆에 사는 게 더 안심이 되는 기업, 사고가 나더라도 신속하고 깔끔하게 뒤처리를 하는 기업, 그게 글로벌 기업의 기본이다.



김 영 훈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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