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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치는 범죄 … 다크서클도 담아야 완성미”

중앙선데이 2013.03.22 22:31 315호 14면 지면보기
‘세계적 패션 사진가’라 하면 이견 없이 꼽히는 세 명이 있다. 스티븐 마이젤,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다. ‘패션 사진’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끌어올리고, 저마다 개성 있는 스타일을 선보여 온 거장들이다.

첫 내한한 세계 3대 패션사진작가 피터 린드버그

그중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69)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4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유명 학교를 나온 것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카메라를 처음 잡은 건 27살이나 돼서였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 영화 같은 흑백 무드, 모델의 무표정한 시선으로 대표되는 린드버그의 사진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1978년 파리로 옮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의 패션 화보는 유럽·미국 보그, 더블유, 하퍼스 바자 등 주요 잡지에 실렸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 도나 카란, 질 샌더 등 미국과 유럽 일류 디자이너들의 광고 사진도 도맡게 됐다. 95년과 97년에는 파리 주요 패션업계 400명 이상의 심사위원들이 수여하는 국제 패션 어워드에서 베스트 포토그래퍼상도 받았다.

서울 청담동 편집매장 10꼬르소꼬모 서울은 개점 5주년을 맞아 린드버그 사진전 ‘Images of Women’(3월 21일~4월 28일)을 마련하고 그를 초청했다. 첫 내한이다.

21일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사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관점이며 작가는 피사체의 감정을 잡아내야 한다.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자체의 미에 집중한다”며 “주름을 지우고 다리를 얇게 하는 리터치는 일종의 범죄”라고 일갈했다. “모델 얼굴에 있는 점 하나, 혹은 어두운 피부빛, 심지어 다크서클 등 그것 자체가 완성된 미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이번 전시 제목은 그의 사진집『Images of Women(1997)』에서 따왔다. 전시 작품도 책에 수록된 작품 중 100점을 추렸다. 책은 8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그가 찍은 수퍼모델·배우·가수 등의 모습 300여 컷을 담은 것으로 의미가 깊다. 그의 작품 세계가 오롯이 드러나면서 ‘세계 최고의 패션 사진가’라는 극찬을 듣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송혜교와의 작업을 떠올리며 “보통 배우들은 영혼이 없는 사진을 찍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이 큰데 그는 사진 찍히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착하고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찍었던 모델 중 가장 맘에 드는 모델을 딱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너무 많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 (여기 나체로 찍은) 영국 모델 크리스틴 맥머나미다. 상업적으로는 덜 유명했고 스타덤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내가 보기엔 수퍼모델 이상의 재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은 기존 패션 화보의 ‘공식’을 거부한다. 옷보다 인물을 강조한다.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퍼드, 마돈나 등 수많은 스타들 역시 그의 사진 속에선 낯선 표정들이다. 대부분이 카메라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환한 웃음은커녕 이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울한 듯 무심한 듯한 얼굴에선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싶다. “패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평론은 여기서 나온다.

기존 틀을 깨는 작품 스타일은 남다른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그는 양 목장을 하는 삼촌집에서 살다 15살에 학교를 관두고 18살에 스위스로 건너가 백화점 진열장 꾸미는 일을 했다. 그러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야간 과정으로 미술을 공부했고, 히치하이킹을 하며 2년간 유럽 여행을 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까지 한 뒤 뒤늦게 사진의 길로 들어섰다. 1971년부터 2년간 뒤셀도르프에서 사진가 한스 룩스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뒤늦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며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서 나의 의견과 관점을 표현할 수 있었기에 매력적이었다”고 술회했다.

한국 사람에게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는 이렇게 답했다. “여러분, 요즘 패션 잡지 속 모델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너무 완벽하게 치장해서 마치 화성에서 온 듯한 이미지는 진짜 그 아름다움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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