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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와 여린 쑥 멸치 우린 ‘멸간장’ 향긋 담백한 궁합

중앙선데이 2013.03.22 23:47 315호 22면 지면보기
1 도다리 쑥국. 봄철의 또 다른 별미 멸치 회무침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봄이 온 천지에 내려앉았다. 영랑의 시 구절 ‘새악시 볼에 떠 오는 부끄럼’처럼 수줍게.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뼘에도 살며시 스며든 봄 내음이 느껴진다. 밀려가는 겨울이 문득 뒤돌아보며 아쉬운 듯 내쉬는 차가운 한숨이 아직 대지에 맴돌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석류 벌어지듯 절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13> 충무상회 도다리 쑥국

봄은 생명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절이다. 얼어붙었던 물도 다시 일어나 졸졸거리고, 땅에서,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튼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우리 몸과 마음도 이 새로운 활력으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럴 때 나는 도다리 쑥국을 먹는다. 봄 기운을 하나 가득 머금고 태어난 향긋한 쑥과 봄에 가장 맛있어지는 도다리는 깨어나는 우리 몸에 봄의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도다리 쑥국은 남해 지역 통영에서 특히 사랑받는 봄철 음식이다.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지 ‘통영의 봄은 맛있다’라는 시에서 도다리 쑥국이 통영의 봄 맛이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봄철이 되면 통영의 항구 주변은 도다리 쑥국 끓이는 냄새로 가득하단다. 해마다 봄이 되면 봄 바다 바람도 쐴 겸 가보고 싶은 생각은 가득하지만 게으른 탓인지 막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대신 고맙게도 통영의 음식을 서울로 그대로 옮겨온 곳이 있어서 매번 그곳으로 간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충무상회’다.

충무는 통영시의 옛 이름이다. 1994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져 통영시가 되었다. ‘충무상회’는 충무 토박이였던 문명숙(57) 사장이 1989년에 서울로 올라와서 문을 열었다.

2 충무상회의 대표 선수, 도다리와 잡어 세꼬시 3 향토적인 느낌의 충무상회 내부 풍경. 통영시 향토 음식 지정업소다.
살림만 하던 평범한 주부였는데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생활력 강한 경상도 ‘아지매’답게 본인이 직접 나섰다. 경험은 없었지만 음식 솜씨 좋으셨던 어머니에게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음식 만드는 것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충무 향토 음식을 하는 걸로 하면서 상호를 ‘충무상회’라고 짓고 조그마한 식당을 시작했다.

친오빠가 매일 아침에 충무 항구에 나가 싱싱한 재료를 사서 보내면 그것을 받아서 음식들을 해냈다. 그저 집에서 하던 대로 편안한 음식들을 만들었는데 음식 솜씨가 좋고 재료도 신선해서 다행히 금세 장사가 잘 되었다. 그렇게 24년이 흘러갔다. 이제는 충무, 통영 음식 하면 금방 떠올리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특히 도다리와 제철 잡어들을 뼈째 썰어 내는 세꼬시는 그 신선도와 맛에서 아주 유명하다. 요즘은 단골들이 아주 많아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거의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지금도 그때 그 오빠가 한결같이 매일 아침에 신선한 재료를 준비해서 올려 보내고 있다.

봄철 나른한 입맛 잡아주는 멸치회무침
도다리 쑥국은 십여 년 전부터 봄철 계절 메뉴로 시작했다. 노지에서 자라 향이 좋은 부드러운 어린 쑥과 작은 도다리를 통영에서 가져와 국을 끓여낸다. 그저 멸치 육수에 조선 된장을 풀고 도다리와 쑥을 넣어 끓이는 단순한 음식이지만 그 맛은 간단치 않다. 마치 봄 햇살처럼 은은하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일품이다. 쑥의 향긋한 향이 생선 비린 맛을 잡아주고 살이 잘 오른 봄 도다리의 담백한 살맛이 국물 맛과 잘 어우러져 입이 행복한 궁합을 이룬다.

다른 식당에서 끓여내는 도다리 쑥국에 비해 더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나는데 비결을 알고 보니 간을 맞추는 간장에 있었다. 일반 콩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통영의 개인 집에서 멸치를 우려내서 소량으로 만들어내는 ‘멸간장’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통영 지방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간장이어서 이래저래 통영의 맛을 종합해 놓은 음식이 되었다.

이 집의 또 다른 봄철 별미는 멸치 회무침이다. 봄이 되면 산란철을 맞아 지방질이 풍부해지고 살이 연해지는 멸치를 맛깔스럽게 양념으로 무쳐낸 멸치회는 봄철 나른한 입맛을 잡아주는 데 최고다. 4월 중순부터는 산란이 시작되면서 금어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즐길 수 있는 제철이다.

봄철이면 ‘충무상회’는 나에게 참새 방앗간이 된다. 좋은 친구들과 마주 앉아 도다리 쑥국을 앞에 놓고 멸치 회무침에 싱싱한 세꼬시 한 접시를 곁들이면 통영의 화사한 봄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봄 기운이 온몸에 가득 차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충무상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13-12, 전화 02-515-6395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헛걸음을 안 한다. 매주 일요일은 쉰다.)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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