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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21세기 관객 모두 기립하게 한 오래된 착한 이야기

중앙선데이 2013.03.22 23:51 315호 24면 지면보기
꿈을 꾸고, 꿈을 푸는 사람. 꿈 때문에 고통받고 꿈 때문에 영광도 얻은 사람. 기독교인이라면 갓난아기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을 바로 그 구약의 요셉 이야기.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명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살이 되던 1968년 런던소재 사립초등학교 콜렛 코트 스쿨에서 15분짜리 칸타타 형식의 공연으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이후 분량을 늘리고 곡을 추가해 1982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꾸준히 재공연되면서 완성도를 더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국내에서는 94년 가수 유열과 신효범 주연으로 공연된 바 있지만 허가받지 않은 해적판이었기에 오래도록 라이선스를 얻지 못하다 이제야 정식으로 선보이게 됐다.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4월11일까지 샤롯데씨어터

사실 의문이었다. 온갖 자극적인 콘텐트에 익숙한 21세기 영악한 관객들에게 이 오래된 착한 이야기가 과연 통할까?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라이언킹’ ‘아이다’의 팀 라이스라는 뮤지컬계 전설적 콤비의 젊은 혈기가 느껴지는 첫 합작품이라는 요란한 수식어보다 ‘1960년대’ ‘초등학교 학예회’용으로 만들어진 ‘성경’ 중심의 ‘가족뮤지컬’이라는 키워드들이 주는 인상이 훨씬 강렬했으니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울 수 있다는 연출의 힘을 새삼 환기시킨 무대였다.
보편성을 위해 성경의 창세기에서 종교의 무게는 털어내고 인간적 발랄함을 채웠다. ‘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라는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버지 야곱이 형들을 제치고 요셉에게 선물한 채색옷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심오한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 물건이지만 무대에서는 그저 아버지의 편애의 상징으로 희석됐고, 하나님의 계시에 해당하는 요셉의 ‘꿈’ 역시 인생의 목표와 희망 정도로 세속화됐다. 요컨대 ‘채색옷’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숨은 뜻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이나 종교적 색채가 불편한 비기독교인이나 이 작품을 각자 원하는 색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융통성을 부여한 셈이다.

세트가 화려한 무대도 아니다. 파라오의 궁전과 황금 전차가 나름 웅장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첨단 메커니즘이 객석을 홀리는 요즘 기준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은 아니었다. 별다른 물량공세 없이도 빈틈이 느껴지지 않게 무대를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의 힘이었다. 성경에서도 손꼽히는 미남인 요셉(조성모·송창의·임시완·정동하)은 넉살 좋고 매력적인 인류 최초의 훈남 캐릭터로 웃음을 이끌었고, 요셉을 팔아넘긴 11쌍 형제 커플의 코믹한 합창과 슬랩스틱 군무도 힘이 셌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어린이 합창단은 아마추어 느낌이 강했지만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훈훈한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섹시한 창법과 안무 돋보인 해설자
의외로 이 무대에서 가장 ‘어메이징’한 것은 그 이름도 밋밋한 ‘해설자’(김선경·최정원· 리사)다. 웨버와 라이스 콤비의 또 다른 작품 ‘에비타’의 해설자 체 게바라의 여성버전에 해당하지만, 골동품처럼 오래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술사’란 이름이 어울릴 법한 그녀의 존재감이 한 수 위였다. 어린이들을 성경 속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이지만 재즈와 록을 오가는 섹시한 창법과 안무로 극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이야기를 맛깔 나게 이끄는 솜씨에 성경에서 ‘하나님’만 쏙 빠진 이 무대 위의 하나님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을 정도다. 덕분에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져 우리에게 다소 낯선 송스루 뮤지컬임에도 조금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었다.
강렬함도 뒤지지 않았다. 워낙 귀에 익숙한 메인테마 ‘Any Dream will Do’ 덕에 포괄적 아동 취향이 염려됐지만 ‘폭풍 가창력’을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었다. 해설자의 노래는 대부분 초고난도의 음역대에서 귀를 호사롭게 했고, 요셉이 감옥에서 부르는 애절하고도 단호한 감동넘버 ‘Close Every Door’가 엔딩에서 되풀이될 땐 관객의 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연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팬서비스도 확실했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를 패러디한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익살은 약방의 감초를 넘어 무대를 휘어잡는 힘으로 대극장 객석을 하나 되게 만들었다. 옛날 이야기의 두께를 걷어내듯 고대 의상을 벗어던지고 가볍고 모던한 복장에 아크로바틱한 안무로 볼거리를 선사하며 기어이 전석을 기립하게 만드는 커튼콜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끝까지 즐거울 수 있게 한 배려가 넘쳤다. 종교를 걷어낸 요셉의 ‘꿈’의 정체가 무어냐는 심각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무대는 그런 논리적 사고를 불허하는 발랄한 키치니까. 꿈과 희망을 노래해서가 아니라 본전 생각에 배 아플 일 전혀 없기에 ‘힐링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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