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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양 회장, '실적 선방'으로 '정권 입김' 피해갈까

중앙선데이 2013.03.24 00:39 315호 12면 지면보기
정준양 포스코 회장(맨 왼쪽)이 22일 오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45기 포스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22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주주총회(이하 주총)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기관투자가와 국내외 주주 200여 명이 참석, 지난해 경영실적 보고와 신규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 오전 9시에 시작돼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끝났다. 한 주주가 주가 하락에 대한 대응책을 촉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잡음도 없었다.

정권 바뀔 때마다 회장 바뀐 ‘민간기업’ 포스코 이번엔…

의장으로 나선 정준양(65) 회장은 “지난해 전 세계 어려운 철강 시황에도 포스코는 다른 업체와 비교해 선전했다”며 “올해는 혁신경영을 통해 회사와 고객이 함께 성공하는 ‘가치경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2000년 9월 민영화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에서 최고경영자(CEO) 선임에 간여해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져 왔다. 비슷한 시기(2002년)에 민영화 된 KT도 정권에 따라 CEO가 바뀌는 운명이었다. 전문가들은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가 과거 공기업 시절처럼 CEO를 좌우하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관행”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민영 기업은 이사회가 CEO를 선임하는 게 지켜져야 주주 경영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날 포스코 주총장 어디에서도 ‘정준양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대신 신재철 전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과 이명우 한양대 로스쿨 교수를 사외이사로, 성장투자사업부문을 맡았던 장인환 부사장과 홍보·대관부문장인 김응규 전무를 사내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주총이 끝난 다음 열린 이사회도 조용했다. 익명을 원한 포스코의 한 사외이사는 “실적에 큰 문제가 없어 회장 임기와 관련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며 “정 회장의 임기는 지난해 주총에서 3년 연임으로 결정이 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외이사도 “‘임기’는 더 이상 논란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포스코 내부에선 정 회장의 입지가 흔들릴 게 없다는 것이다. 경영과 관련해서도 정 회장을 낙마시킬 만한 이슈가 없다.

“정부가 공기업처럼 CEO 좌우해선 안 돼”
새누리당의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욕심을 내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하는 게 좋겠다”면서도 “포스코는 당이나 정부에서 간여할 수 없는 민간 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일 당이나 정부에서 영향을 미치면 그 사람이 (이명박 정권 실세로 포스코 회장 선임에 간여한) 박영준처럼 되는 거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최대 주주는 지분 5.99%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뱅크오브뉴욕멜론도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15.41%(지난해 6월 말 기준)의 지분을 갖고 있다.

KT와 달리 포스코는 딱히 후보군으로 거명되는 사람이 드물다. 고(故) 박태준(TJ) 명예회장 재임 당시부터 외압 차단에 주력해 온 만큼 철강 전문가가 아닌 외부인이 낙하산으로 회장 자리에 들어오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부에선 정 회장의 ‘라이벌’이 될 만한 인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총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박기홍(55)·김준식(59) 사장은 나이나 경력에서 정 회장에게 한참 후배다. 2009년 정 회장이 회장 자리를 놓고 겨루던 윤석만(당시 포스코 사장·65)이란 라이벌이 있을 때와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윤 전 사장은 정 회장과 나이는 같지만 포스코 입사는 한 해 더 빨랐다. 또 포스코 CEO 선임에 지분이 확실한 TJ와 더 가까웠다. 윤 전 사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고향(충남 당진)에 내려와 있다. 주총이나 회장 임기에는 관심이 없다. 정 회장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전 대립각을 세웠을 때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때 유상부, 이명박 때 이구택 사퇴
사내 경쟁자가 없는 이유는 그동안의 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정 회장은 2010년 초 등기임원 임기가 만료된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과 이동희 사장(재무투자부문장), 허남석 부사장(생산기술부문장), 정길수 부사장(스테인리스부문장) 등 4명을 퇴진시켰다. 이들은 모두 정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50대 초·중반의 임원으로 채웠다. 극심한 내홍을 겪고 회장 자리에 올랐던 정 회장이 조직을 장악한 뒤에는 세대교체를 한 것이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 교수는 “일본도 한국보다 수십 년 일찍 공기업 민영화 수순을 밟았지만 상당 기간 정부가 사장 인선에 간여했다”며 “부정부패 같은 정권 스캔들이 터지면서 실적으로 CEO를 평가하고 전임자가 후임 CEO를 키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입맛에 맞는 CEO로 교체하면 ‘뒤탈’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포스코 내부와 달리 청와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낙하산 인사는 있을 수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다. 포스코가 민영화 13년째이지만 청와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청와대의 의중은 여전히 분명치 않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측근들이 정 회장의 교체 여부를 간접적으로 여쭤 봤으나 대통령께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정 회장으로선 불심임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연임에 대한 확실한 지지의사도 받지 못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또 “박 대통령은 포스코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뤄 낸 기업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며 “포스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런 청와대의 의중을 정 회장도 알고 있다는 게 포스코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실 정권교체기마다 포스코 최고경영진과 관련된 의혹이 불거져 왔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12월에는 포스코가 세무조사를 막기 위해 국세청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임기 1년을 남긴 이구택(67) 당시 포스코 회장이 두 달 뒤인 2009년 1월 자진사퇴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에는 유상부 당시 회장이 전철을 밟았다.

정 회장도 지난해 ‘이상득 의원(MB의 형)의 부탁으로 포스코가 부산저축은행에 500억원을 투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포스코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익명의 제보자’에게 공개경고를 했다.

정 회장이 비판을 받는 부분도 있다. 2009년 정 회장 취임 이후 3~4년간 인수합병을 통해 계열사가 지난해 한때 70개까지 급증했다. 이후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50여개로 줄였다. 포스코그룹이 급격히 몸집을 불리며 취임 초 7조원대에 달했던 현금성 자산이 현재 2조원대로 줄어든 점도 부담이다.

권석균(한국외대 교수) 한국인사조직학회 회장은 “포스코처럼 이렇다 할 대주주가 없는 회사의 경우 이사회가 결국 지배구조의 핵심”이라며 “이사회에서 경영상의 실패를 지적하지 않는 한 회장이 임기 중간에 그만두는 건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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